강력한 규제개혁으로 기업활동을 막는 '대못'을 빼내겠다고 선언한 정부가 정작 기업들이 애로를 호소한 핵심규제 개선안의 절반을 수용할 수 없다며 거부한 것으로 나타났다.

23일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와 대한상공회의소가 공동으로 설립한 민관합동규제개혁추진단에 따르면 기업들이 건의해 정부 관계부처와 개선을 협의한 670건의 규제 가운데 325건인 48.5%가 수용 거부된 것으로 집계됐다. 정부가 중ㆍ장기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답한 74건(11%)을 포함하면 60%가량의 기업들이 개선을 요구한 규제가 그대로 방치되고 있는 셈이다. 반면 정부가 철폐 또는 완화하기로 한 규제는 271건(40.5%)에 불과했다.

정부가 미뤄둔 규제는 수도권 공장입지 제한,과도한 폐기물 부담금 제도 등 기업들이 현장에서 애로를 겪는 부분들이 주를 이루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행 법규정에 따르면 정부는 현재 ㎏당 7.6원 수준인 폐기물 부담금을 2012년까지 ㎏당 120원 수준으로 20배가량 인상할 예정이다. 기업들은 이 같은 과도한 부담이 기업의 투자를 위축시킬 수 있다며 완화를 요청했지만 정부는 환경단체의 압력으로 현행 유지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정부의 미온적인 규제완화에 대해 기업 관계자는 "정부는 기업들에 투자를 확대하라고만 할 뿐 핵심 규제완화에는 소극적"이라고 지적했다. 기업들의 목소리보다 환경단체와 같은 특정 이익단체들의 반발을 먼저 고려하거나 지방자치단체와 이해관계가 얽혀 규제개혁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인다는 설명이다. 이에 대해 규제개혁추진단은 "올해 개선되지 못한 과제들은 앞으로 합리적인 대안을 모색해 기업 불편이 해소되도록 노력하겠다"고 설명했다.

규제개혁추진단은 지난 4월 설립돼 9개월 동안 전국 26개 지역을 돌며 기업들의 현장애로 사항을 점검하고 이를 매월 대통령이 참석하는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에서 보고해 왔다. 내년부터 섬유와 기계,바이오 등 특정 산업 집적시설을 방문해 업종별 규제 파악에 주력하기로 했다. 또 노사문제와 환경문제 등 경영에 영향을 미치는 규제들에 대해서도 정부부처에 규제 완화를 건의할 계획이다.

김상열 대한상의 상근부회장은 "규제 완화는 별도의 예산없이 경제성장률을 높일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라며 "앞으로 다양한 경로를 통해 기업현장 애로가 신속히 해소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김현예 기자 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