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 묵묵히 함께 걸어가는 당신이 있어 위로가 됐다
우린 서로에게 소중한 존재였다

지리산(智異山)이란 명칭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설명이 있다. '지혜로운 이인이 많은 산'이라거나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지루한 산'이라는 등 다양하다. 그중에서 우리 희망 등반대의 마음에 꼭 든 것은 '어리석은 사람이 머물면 지혜로운 사람으로 달라지는 산'이라는 설명이었다. 세상이 가져다준 온갖 번뇌와 고통,거기서 얻은 어리석음을 산기슭에 묻어두고 '한번 새롭게 출발해보자'며 떠난 지리산 희망 종주는 하늘이 시리게도 파랗던 2008년 12월16일 오전 9시에 시작됐다. 희망 등반대의 종주 취지에 공감한 지리산국립공원 측에서 김종희 팀장과 박근제씨,전문산악인 정병호씨도 합류해 안내를 맡았다.

지리산의 서쪽 끝인 성삼재 휴게소에서 쌀,버너,코펠 등을 공평하게 나눠 짐을 꾸리고 기자 한 명과 '내일을 여는 집' 재활인 한 명씩 총 5개의 조를 짰다. 가슴을 죄어오는 막연한 두려움과 뭔가 다른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교차하는데 느닷없이 "출발" 구호가 떨어졌다. 마음을 가다듬을 시간도 없이 바로 배낭의 무게가 현실이 됐다. 10분도 지나지 않아 땀이 비오듯 쏟아졌다. 등산화에 착용한 아이젠은 천근같이 느껴졌다. 이렇게 꼬박 2박3일을 걸을 수 있을까. 이 어색함은 어떻게 떨쳐낼까.



◆첫째날

1시간 동안 말 없이 빙판길을 걸어 도착한 노고단 대피소.이번 산행의 안내를 맡아준 김 팀장이 멀리 동쪽 끝을 가리켰다. "저기 삼각형 모양의 봉우리가 목적지인 천왕봉입니다. " 아득한 거리에 신음소리와 함께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이미 길 위에 올라섰으니 돌아갈 순 없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한마음으로 총 33.5㎞를 가야 한다. 이를 의식한 듯 김현예 기자가 등반대 막내 박정일씨의 얼굴에 선크림을 발라줬다. 그러자 다들 서로의 배낭과 신발끈을 조여줬다.

노고단에서 오늘밤을 보낼 연하천 대피소까지는 10.5㎞.총 6시간을 가야 한다. 눈 쌓인 길 양옆으로 복조리를 만드는 데 쓴다는 산죽(山竹) 행렬이 등반대에 안겨왔다. 능선을 따라 걷는 길이라 숨이 덜 가쁜지 동반자들끼리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주제는 단연 살아온 이야기였다. 1998년 외환위기 때 조그맣게 하던 페인트 장사가 망한 뒤 공사판을 전전하며 술로 세월을 보냈다는 이칠성씨(45),인천 주안시장에서 닭장사를 하다 지난해 조류 인플루엔자 사태로 닭 35만마리를 땅에 묻고 눈만 뜨면 앉은 자리에서 소주 5병을 마셨다는 고길연씨(44),중국집 주방장으로 일하다 신용카드 대란 때 신용불량자로 전락하고 가족들로부터도 버림받았다는 조성구씨(38),건달이었던 아버지와 어릴 때 집을 나간 어머니 때문에 비뚤어진 청년기를 보냈다는 박정일씨(26) 등 모두 이 거대한 산에 과거 따위는 모두 내던지고 가겠다는 듯 구구절절한 사연들을 쏟아냈다. 오르막길과 내리막길,능선이 반복되는 산길은 그들이 걸어온 삶의 여정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았다.

첫날 밤을 보낼 연하천 대피소에 도착한 것은 오후 5시께.이제 밥을 지어야 한다. 공평하게 나눴던 쌀을 서로 내려놓겠다며 난리다. 수건 한장까지 버리고 싶을 만큼 어깨를 짓누르던 짐을 조금이나마 덜고 싶은 마음은 모두 같았나 보다. 남들보다 15분 뒤처진 조일훈 기자와 유창재 기자,그리고 등반대장 김상철 부장이 식사 당번으로 정해졌다. 5평 남짓한 취사장.코펠 위에 돌을 얹어 15인분의 밥을 짓고 일회용 국을 끓였다. 다른 등산객들이 끓인 김치찌개가 부럽게 느껴졌다. 그래도 밥이 완성되자 바쁘게 숟가락이 오고갔다. 살아남기 위해 먹어야 하는 밥이기도 했고 성취한 자만이 먹을 수 있는 밥이기도 했다.

대피소의 소등시간은 8시였다. 밤하늘은 차가웠지만 온통 별빛들로 반짝였다. 이구동성으로 "세상에 이렇게 많은 별들은 처음 봤다"고 탄성을 냈다. 침낭을 머리끝까지 뒤집어 썼는데도 코끝이 시렸다. 난방이 전혀 되지 않았다. 내내 씩씩하던 박신영 기자는 자면서 끙끙 앓는 소리를 냈다. 행여 다른 사람에게 짐이 될까 모두들 온 몸이 쑤셔오는 고통을 꾹꾹 참아내고 있었다.



◆둘째날

날이 밝았다. 점심을 먹을 세석 대피소까지 9.9㎞,그리고 숙박을 할 장터목 대피소까지 3.4㎞를 걸어야 한다. 어제보다 오르막길이 더 많다고 했다. 또다시 메야 하는 배낭이 원수처럼 느껴졌다. 어제와는 달리 매서운 바람과 함께 눈발도 날렸다. 모두들 말이 없었다. 고등학교 시절 마라톤을 했다는 고길연씨는 앞장서 등반대의 향도 노릇을 했다. 이칠성씨는 딸 같은 박신영 기자가 행여 발을 헛디딜까 자꾸 뒤를 돌아봤다. 출발 전부터 감기를 앓았다는 조성구씨도 애써 밝은 표정으로 묵묵히 같은 조인 조일훈 기자의 곁을 지켰다. 사회에서는 어땠는지는 몰라도 이곳 지리산에선 서로에게 없어선 안 될 소중한 존재였다. 내 존재 자체가 다른 사람에게 힘과 위로가 되는 것.모두는 너무도 오랜만에 그 작은 진리를 기억해내고 스스로 벅차하고 있었다.

세석 대피소에서 카레밥으로 늦은 점심을 때우고 다시 발길을 뗐다. 마지막 고비인 촛대봉으로 가는 길.올라도 올라도 계속 오르막길이 나왔다. 숨이 턱까지 차올라 더 이상 한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할 것 같았다. 산악인 정병호씨가 "300m만 올라가면 된다"고 했다. 거짓말이었다. 300m가 지나면 또 "300m만",그리고 또 "저 계단만 지나면"이라고 했다. 우리는 거짓말인지 알면서 계속 속았다. 믿지 않으면,속지 않으면 주저앉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때 앞서 가던 누군가 얘기했다. "한번 주저앉으면 다시 일어서기 어려워요. 노숙생활할 땐 그걸 몰랐어요. "

드디어 천왕봉 정복을 위한 마지막 베이스캠프인 장터목 대피소에 도착했다. 이제 지루한 산행이 끝나간다. 밥을 해먹고 자리에 누웠다. 창문을 때리는 매서운 바람소리에 잠이 오지 않았다. 모두들 뜬눈으로 상념에 잠겼다. 이틀 동안 내려놓은 고통스런 과거를 내일 새벽 천왕봉은 무엇으로 채워줄까. 걱정과 희망이 교차했다.

지리산=유창재 기자 yoocool@hankyung.com



● 희망 등반대 명단

△김철희 인천 '내일을 여는 집' 목사

△고길연ㆍ이칠성ㆍ문용산ㆍ조성구ㆍ박정일(재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