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멀리 악당을 피해 달아나는 한 여자의 모습이 보인다. 어디선가 빨간색과 파란색이 섞인,몸에 꽉끼는 쫄티(?)를 입은 영웅이 갑자기 거미줄을 타고 나타나 일순간에 악당들을 처치한다. 영화 '스파이더맨' 얘기다. 그는 이미 영화에서 악당에 쫓기는 수 많은 시민을 구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을 낳아준 기업,즉 마블 엔터테인먼트(옛 마블 코믹스)까지 살려냈다. 전세계에서 1조원이 넘는 돈을 벌어들이면서 말이다. 마블 코믹스는 지난 수 십 년간 DC코믹스와 함께 북미 만화책 시장의 리더였다. 스파이더맨과 엑스맨,헐크 등 수많은 히트 만화를 내며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인터넷이 출현한 뒤 상황이 180도 변했다. 종이 만화 시장이 크게 축소되면서 파산 위기에 처한 것이다.

한계상황에서 고민하던 마블 코믹스는 새로운 성장 돌파구를 영화에서 찾았다. 5000여개에 달하는 자사의 유명 캐릭터를 영화로 만들어 과거 만화책 영웅들에게 열광했던 사람들의 향수를 자극하자는 전략이었다. 마블은 그날로 영화 제작사와 제휴를 맺었다.

이처럼 환경 변화에 따라 핵심 사업이나 비즈니스 전략을 바꾸는 것을 경영학 용어로 '재정의(redefine)'라 한다. 마블의 재정의 전략은 적중했다. 이후 마블은 라이선스 판매로 핵심사업을 바꿔 각종 장난감과 캐릭터 용품,비디오 게임 산업 등으로 진출하며 큰 성공을 거뒀다. 만화 속 영웅들이 미래가 불투명한 만화책 회사를 성공한 캐릭터 라이선스 회사로 탈바꿈시킨 것이다. 더 나아가 마블은 영화를 자체 제작하는 방안까지 구상 중이다.

기업을 하다 보면 예기치 못한 환경 변화로 인해 핵심 사업이 한계에 부딪히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 때는 마블 코믹스 처럼 자사의 핵심 역량을 재정의하는 데서 탈출구를 찾아야 한다. 그 기업이 이미 갖고 있지만,지금까지 그 가치가 충분히 인정받지 못했던 '숨은 자산(hidden asset)'을 찾아내는 게 급선무다. 마블 코믹스의 경우 겉으로 드러난 자산은 '만화책'이었지만,숨은 자산은 '캐릭터와 스토리'였다.

대부분의 기업은 눈에 보이는 역량에 집중한다. 그러나 구석구석 찾아보면 여태 몰랐던 그 기업 고유의 강점들이 숨어있기 마련이다. 요즘 같은 불황기에는 마른 수건 짜내듯 숨은 자산 찾기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생존을 위해 과감하게 환골탈태해 보는 것도 필요하다. 기회는 준비된 자만이 잡을 수 있다.

세계경영연구원 조미나 이사,조성진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