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재 <논설위원 경제교육연구소장 jkj@hankyung.com>

좀비까지 살리는 포퓰리즘으론 경제위기 극복할 수 없어

자본주의는 탐욕을 먹고 산다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지난 10여년은 더욱 그랬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탐욕 아닌 절제를 가르치는 체제다. 밀실의 탐욕을 광장에 끌어내 경쟁시키고 그 결과 무분별한 욕구를 질서정연하게 삭감한다. 경제위기도 마찬가지다. 위기는 탐욕을 벌주고 근면하는 방법을 가르친다. 대박이나 한탕 아닌 연 5%의 은행 금리가 진정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3~4%에 불과한 것이지만 땀 흘려 일구어 내는 경제성장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쥐꼬리 월급이라도 작은 일자리 하나에 우리의 삶이 온전히 매달려 있다는 것을 우리는 풍전등화의 상황에서 비로소 깨닫게 된다.

바로 그런 점 때문에 시장은 종종 악당처럼 비쳐지고,자주 원망을 부르며,때로는 만인의 적개심을 불러 일으킨다. 공짜를 허용하지 않기에 공짜가 필요한 그 누구라도 시장 아닌 정치의 뒷골목을 배회하게 되고,대중 선동을 통해 이권을 추구하고,문전옥답의 알토란 같은 지대(地代)를 걷고자 여념이 없게 된다. 한국에 유독 반시장 정서가 높다는 것은 그만큼 공짜가 많고,공짜가 늘어나는 만큼 정치 공간은 비례적으로 확대된다. 직불금 논란이나 전직 대통령의 친형이 관련된 사건도 그렇고,예산안 계수조정을 둘러싸고 지난 주말 국회의원들이 그토록 치열한 멱살잡이를 했던 것도 나랏돈을 공짜로 먹으려는 정치 투쟁이다.

유례 없는 경제 위기를 맞은 지금 대중정치의 역풍이 오히려 시장에 역류해 들고 있다는 것은 그다지 놀라운 일은 아니다. GM노조와 경영자들이 두꺼운 얼굴로 구제금융을 청하는 것이나 투자은행들이 넙죽넙죽 구제금융을 받아 챙기는 것은 용납될 수 없는 시장의 타락이다. 어차피 포퓰리즘 속에서 태어난 것이 서브프라임이고 탐욕의 투자은행들이 워싱턴 정가를 타락시킨 것이 이번 사태의 본질이다. 문제는 더 큰 포퓰리즘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미국이 제로 금리를 설정하고 GDP의 10%가 넘는 달러를 퍼붓는 것이 장차 어떤 미증유의 사태를 초래할 것인가. 지금은 달러를 구하지 못해 안달이지만 어느 변곡점을 지나면 졸지에 달러가 휴지로 변질되지 말라는 법이 없고,그렇게 되면 국제 무역질서는 초토화된다. 거품은 터진다는 것이 공식이듯이 포퓰리즘의 종말이 어떤 것인지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이것이 우리 가슴 속에서 자라나고 있는 불안감의 진짜 근원이다. 대중 민주주의 시대에는 시장조차 필연적으로 타락하고 마는 모양이다.

과잉을 덜어내고 낭비를 삭감하는 구조조정이 아니라면 시장은 살아날 수 없다. 하나의 좀비가 다른 모두를 좀비로 만들고 마는 법이다. 대중매체들이 위기를 과장하고 정치가들이 좀비까지 살리겠다고 나선다면 시장규칙은 무너지고 화폐가치는 훼손된다. 이는 더 큰 불상사가 장기화되는 전조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대주단에 들어간다 안 간다며 정부를 압박하고 벼랑 끝 전술을 구사하는 일부 기업들의 시위까지 정부는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멀쩡한 기업까지 늪지대로 밀어넣을 수는 없다. 은행도 마찬가지다. 펀드 팔고 보험 팔아 수수료 벌이에 심취해왔던 지난 10년이다. 스스로 절제(예금)를 버리고 탐욕(투자)에 몰입해갔던 거다. 항차 한국은행이 꾸어주는 달러화의 금리까지 내려달라고 생떼를 부린다면 이건 아예 은행들의 촛불집회다. 엄정한 규칙을 세우는 것이 지금 이명박 정부가 할 일이다. 미국을 따라할 일이 아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대중의 여론을 결코 시장의 반응으로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대중의 정서를 시장의 반응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3류의 정치 술수요, 천박한 언론의 주특기다. 모든 기업을 살리겠다는 허풍은 결과적으로 아무런 기업도 살리지 않겠다는 명제와 정확하게 동어반복이다. 거짓 경제학의 정치 공세가 거칠어지는 요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