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은행별로 '패스트 트랙' 강제 할당
구조조정도 본격화 … '요주의' 5% 퇴출될듯

금융당국이 이달 말까지 은행별로 400~500개의 중소기업을 패스트 트랙(기업 신속지원 프로그램)에 집어넣도록 강제 할당한 것으로 확인됐다. 자금난을 겪고 있으면서도 패스트 트랙에는 자발적으로 가입하지 않은 중소기업 가운데 회생 가능성이 있는 기업을 은행이 직접 골라내 패스트 트랙에 가입시키라는 것이다.

이 같은 조치는 일시적인 자금난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을 적극 지원하겠다는 취지지만 정작 은행에서는 이달 말까지 할당 목표를 채우려면 우량 중소기업에 자금을 내줄 수밖에 없고,그 결과 정작 돈이 필요한 업체는 자금 확보가 더욱 어려워지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또 '살릴 기업'과 '퇴출할 기업'을 선별하도록 은행에 지시하는 등 기업 구조조정 작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은행별로 500개 기업 무조건 지원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이달 말까지 패스트 트랙에 가입시킬 기업 수 목표치를 은행별로 제시했다. 은행들로부터 한 달 내에 자금을 지원해줄 업체 수가 적힌 계획서를 제출받은 뒤 이를 토대로 금감원은 각 은행이 채워야 할 목표치를 할당했다. 국민ㆍ우리ㆍ신한ㆍ하나은행 등은 400~500개가량의 중소기업을 패스트 트랙에 가입시키라는 목표치를 부여받았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금감원과 협의할 때는 일반적으로 이메일이나 전화를 이용하는데 이번에는 은행의 정식 공문 형태로 계획서를 제출하도록 요구받아 반드시 이행해야 한다는 부담이 생겼다"며 "시일이 촉박해 당장 자금 지원을 해도 문제가 없는 우량 기업을 중심으로 패스트 트랙 신청을 하도록 독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패스트 트랙은 중소기업이나 키코(KIKO) 등 통화옵션 상품에 가입해 피해를 본 대기업에 자금을 신속히 지원하도록 운영되고 있지만 기업들은 '평판 리스크'를 우려해 패스트 트랙 가입을 꺼리고 있다. 현재 은행별로 패스트 트랙 신청을 받은 기업 수는 50~300개 선에 그치고 있으며 실제로 나간 대출액은 은행별로 100억원 안팎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거래 기업 중 5% 퇴출

은행들은 또 퇴출이나 법정관리,워크아웃에 편입시킬 기업을 골라내는 작업에도 착수했다. 국민은행은 회계법인과 함께 기업 실사를 벌인 뒤 한계기업에 대해서는 여신 지원을 줄이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거래 기업 가운데 신용등급이 B- 이하인 '요주의' 대상은 5% 수준으로 이 중 일부가 구조조정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하나은행은 최근 기업 구조조정 작업을 총괄하는 '리스크관리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금융 지원과 구조조정을 병행하고 있다. 현재 태산LCD 등 4~5개 기업을 워크아웃 대상으로 분류해 다른 채권은행들과 함께 채무 재조정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또 거래기업 등급을 17개로 나눠 요주의 이하인 11등급 이하 업체에 대해서는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요구하거나 퇴출 작업을 벌일 예정이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전체 거래 기업 중 5~6%가 요주의 이하 등급에 속한다"고 설명했다.

신한은행은 기업금융개선지원본부를 설치해 건설업 조선업 해운업 등 3개 업종에 대한 특별 관리에 들어갔으며 우리은행도 조만간 구조조정 전담 부서를 만들어 살릴 업체와 그렇지 않은 업체를 나눌 계획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정부가 구조조정 방향을 제시함에 따라 기업의 연말 결산을 기점으로 구조조정이 본격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한국기업평가가 회사채 신용등급을 매기는 중견기업 및 대기업 326개 가운데 BB+ 이하의 투기등급은 24.8%(81개)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인설/김현석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