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미네르바다" …패러디 칼럼 해프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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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미네르바다" …패러디 칼럼 해프닝
"내가 바로 그 미네르바다. 더 이상 정부와 언론은 날 찾느라 시간을 허비하지 않길 바란다."
'인터넷 경제대통령' 불려지며 신드롬을 만들고 있는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가 누구냐는 관심이 증폭되고 있는 가운데 곽인찬 파이낸셜뉴스 논설위원이 2일 오후 이 신문 온라인판에 '미네르바 자술서'라는 글을 올리고 이같이 밝혀 논란이 됐으나 해프닝인 것으로 드러났다.
곽 위원은 '미네르바 자술서' 논란이 커지자 "자신은 '미네르바'가 아니다"라고 밝힌 뒤 문제의 칼럼을 삭제조치했다.
곽 위원은 '미네르바'를 이용한 패러디 칼럼으로 현 정부의 경제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하고자 했다.
하지만 네티즌들은 이 칼럼을 블로그와 카페 등에 옮기면서 곽 위원이 '미네르바'라는 인식는 확산되면서 논란이 일파만파로 확대되고 있다.
파이낸셜뉴스에서도 "칼럼 반향이 이처럼 커지리라 생각못했다"며 대응책 마련에 분주한 상황이다.
이날 칼럼을 접한 한 네티즌은 "미네르바가 정말 누구인지 궁금했는데, 한 마디로 완전히 '낚였다'(속았다)"고 말했다. 다른 네티즌은 "언론사가 조회수 늘리기 위해 '미네르바'를 사칭한 노골적인 글을 올렸다"며 비난했다.
다음은 미네르바 자술전 전문.
자수한다. 내가 바로 그 미네르바다. 더 이상 정부와 언론은 날 찾느라 시간을 허비하지 않길 바란다. “당신이 미네르바라는 걸 어떻게 믿느냐”고? 허참, 신뢰의 위기가 정말 심각하군. 좋다, 증거를 대겠다. 나는 부엉이 한 마리를 애지중지 키운다. 어두운 밤 내가 컴퓨터 자판을 두드릴 때 그 부엉이는 늘 내 어깨 위에 앉아 있다. 인터넷에 올리는 글이 막힐 때 나는 부엉이의 지혜를 빌린다. 지혜의 여신 미네르바와 부엉이의 동거 얘기는 다들 들으셨겠지. 제발 좀 믿고 살자. 그럼 이쯤에서 내가 미네르바라는 입증 프로세스를 마치고 본론으로 들어가겠다.
듣자하니 내가 요즘 떴단다. ‘인터넷 경제 대통령’으로 부르는 사람도 있다니 황공무지로소이다. 아마 사람들은 리먼 브러더스의 파산과 환율 급등, 주가·부동산 급락을 내다본 내 신통력에 놀란 모양이다. 내가 추천한 책이 서점에서 불티나게 팔리고 인터넷 토론광장 ‘아고라’에 올린 글들을 모아 선집으로 펴냈다는 얘기도 들린다. 언론은 ‘미네르바 신드롬’을 연일 크게 다루고 있다.
고백하건대 진짜 놀란 사람은 바로 나다. 지난 여름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일이 이렇게 번질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냥 알량한 경제지식과 상식에 입각해 소신껏 글을 올렸을 뿐인데 사이버 공간이 좋긴 좋다. 제도권 언론이나 애널리스트들과 달리 눈치 안 보고 마음껏 쓸 수 있다는 게 사이번 논객들만의 특권이다. 그런데 경제 파탄을 예고하는 ‘닥터 둠(Dr.Doom)’의 글에 댓글이 줄줄이 붙자 몇몇 분들의 심기가 불편했던 모양이다. 게다가 토론방 이름까지 ‘아고라’라니! 바로 정권 초 쇠고기 파동을 부추긴 그 못돼먹은 토론방이 아닌가. 정부는 과민성 스트레스 반응을 보였고 나는 절필 선언과 동시에 잠적했다. 그랬더니 더 웃기는 일이 벌어졌다. 아, 글쎄 내가 순교한 예언자로 둔갑하는 것이었다. 이제 난 전설이 됐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전설의 순교자답게 할 말이나 해보자. 정부에 묻는다. 왜 사람들은 나를 순교자로 추앙할까. 왜 사람들은 정부보다 내 말에 더 귀를 기울일까. 왜 사람들은 현 경제팀이 위기를 극복할 능력이 없다고 보는 걸까. 한 마디로 정부가 불신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무슨 말을 해도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거린다. 반면에 나는 반토막 펀드를 쥐고 밤잠을 설치는 투자자들의 막막한 속을 시원하게 긁어줬다. 그들이 나를 따르는 건 당연하다. 혹자는 내 글을 혹세무민하는 도참(圖讖) 쯤으로 폄훼하기도 한다.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얘기다. 도참은 불신을 먹고 자란다. 불신이 사라지면 도참이 뿌리 내릴 공간이 없다. 오늘날 위기가 10년 전 외환위기와 크게 다른 점은 바로 나같은 이들이 활개칠 공간이 널찍하게 마련됐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나를 키운 건 8할이 이 정권이다.
흘러간 옛 관료가 각광을 받는 것은 내가 주목을 받는 것과 같은 이유에서다. 외환위기 극복의 주역이었던 이헌재 전 장관은 최근 계단까지 빽빽이 들어찬 한 강연에서 “초기 진화에 실패한 남대문 화재의 참상이 떠오른다”고 걱정했다. 현직 관료들은 이 전 장관의 등장에 주체할 수 없는 부끄러움을 느껴야 한다. 손성원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석좌교수는 “한번에 확 몰아서 ‘빅뱅’ 정책을 내놔야 한다”고 말했다. 참 어려운 주문이다. ‘낫과 망치’를 들었다가 힘 없이 내려놓고 건설사 구조조정 하나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현 정부의 능력을 손 교수는 과대평가하고 있다.
시장 실패가 초래한 현재의 위기는 정부가 풀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정부 자체가 갈팡질팡, 쩔쩔매고 있다. 비상시기에 걸맞은 발상의 전환으로 이 난국을 헤쳐나가야 한다. 나 미네르바는 사이버 순교자답게 이 한몸 바쳐 난국이 풀릴 수 있다면 목숨이라도 던지겠다. 꼭 던지겠다는 게 아니라 원칙이 그렇단 얘기다.
한경닷컴 박세환 기자 greg@hankyung.com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newsinfo@hankyung.com
'인터넷 경제대통령' 불려지며 신드롬을 만들고 있는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가 누구냐는 관심이 증폭되고 있는 가운데 곽인찬 파이낸셜뉴스 논설위원이 2일 오후 이 신문 온라인판에 '미네르바 자술서'라는 글을 올리고 이같이 밝혀 논란이 됐으나 해프닝인 것으로 드러났다.
곽 위원은 '미네르바 자술서' 논란이 커지자 "자신은 '미네르바'가 아니다"라고 밝힌 뒤 문제의 칼럼을 삭제조치했다.
곽 위원은 '미네르바'를 이용한 패러디 칼럼으로 현 정부의 경제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하고자 했다.
하지만 네티즌들은 이 칼럼을 블로그와 카페 등에 옮기면서 곽 위원이 '미네르바'라는 인식는 확산되면서 논란이 일파만파로 확대되고 있다.
파이낸셜뉴스에서도 "칼럼 반향이 이처럼 커지리라 생각못했다"며 대응책 마련에 분주한 상황이다.
이날 칼럼을 접한 한 네티즌은 "미네르바가 정말 누구인지 궁금했는데, 한 마디로 완전히 '낚였다'(속았다)"고 말했다. 다른 네티즌은 "언론사가 조회수 늘리기 위해 '미네르바'를 사칭한 노골적인 글을 올렸다"며 비난했다.
다음은 미네르바 자술전 전문.
자수한다. 내가 바로 그 미네르바다. 더 이상 정부와 언론은 날 찾느라 시간을 허비하지 않길 바란다. “당신이 미네르바라는 걸 어떻게 믿느냐”고? 허참, 신뢰의 위기가 정말 심각하군. 좋다, 증거를 대겠다. 나는 부엉이 한 마리를 애지중지 키운다. 어두운 밤 내가 컴퓨터 자판을 두드릴 때 그 부엉이는 늘 내 어깨 위에 앉아 있다. 인터넷에 올리는 글이 막힐 때 나는 부엉이의 지혜를 빌린다. 지혜의 여신 미네르바와 부엉이의 동거 얘기는 다들 들으셨겠지. 제발 좀 믿고 살자. 그럼 이쯤에서 내가 미네르바라는 입증 프로세스를 마치고 본론으로 들어가겠다.
듣자하니 내가 요즘 떴단다. ‘인터넷 경제 대통령’으로 부르는 사람도 있다니 황공무지로소이다. 아마 사람들은 리먼 브러더스의 파산과 환율 급등, 주가·부동산 급락을 내다본 내 신통력에 놀란 모양이다. 내가 추천한 책이 서점에서 불티나게 팔리고 인터넷 토론광장 ‘아고라’에 올린 글들을 모아 선집으로 펴냈다는 얘기도 들린다. 언론은 ‘미네르바 신드롬’을 연일 크게 다루고 있다.
고백하건대 진짜 놀란 사람은 바로 나다. 지난 여름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일이 이렇게 번질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냥 알량한 경제지식과 상식에 입각해 소신껏 글을 올렸을 뿐인데 사이버 공간이 좋긴 좋다. 제도권 언론이나 애널리스트들과 달리 눈치 안 보고 마음껏 쓸 수 있다는 게 사이번 논객들만의 특권이다. 그런데 경제 파탄을 예고하는 ‘닥터 둠(Dr.Doom)’의 글에 댓글이 줄줄이 붙자 몇몇 분들의 심기가 불편했던 모양이다. 게다가 토론방 이름까지 ‘아고라’라니! 바로 정권 초 쇠고기 파동을 부추긴 그 못돼먹은 토론방이 아닌가. 정부는 과민성 스트레스 반응을 보였고 나는 절필 선언과 동시에 잠적했다. 그랬더니 더 웃기는 일이 벌어졌다. 아, 글쎄 내가 순교한 예언자로 둔갑하는 것이었다. 이제 난 전설이 됐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전설의 순교자답게 할 말이나 해보자. 정부에 묻는다. 왜 사람들은 나를 순교자로 추앙할까. 왜 사람들은 정부보다 내 말에 더 귀를 기울일까. 왜 사람들은 현 경제팀이 위기를 극복할 능력이 없다고 보는 걸까. 한 마디로 정부가 불신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무슨 말을 해도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거린다. 반면에 나는 반토막 펀드를 쥐고 밤잠을 설치는 투자자들의 막막한 속을 시원하게 긁어줬다. 그들이 나를 따르는 건 당연하다. 혹자는 내 글을 혹세무민하는 도참(圖讖) 쯤으로 폄훼하기도 한다.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얘기다. 도참은 불신을 먹고 자란다. 불신이 사라지면 도참이 뿌리 내릴 공간이 없다. 오늘날 위기가 10년 전 외환위기와 크게 다른 점은 바로 나같은 이들이 활개칠 공간이 널찍하게 마련됐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나를 키운 건 8할이 이 정권이다.
흘러간 옛 관료가 각광을 받는 것은 내가 주목을 받는 것과 같은 이유에서다. 외환위기 극복의 주역이었던 이헌재 전 장관은 최근 계단까지 빽빽이 들어찬 한 강연에서 “초기 진화에 실패한 남대문 화재의 참상이 떠오른다”고 걱정했다. 현직 관료들은 이 전 장관의 등장에 주체할 수 없는 부끄러움을 느껴야 한다. 손성원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석좌교수는 “한번에 확 몰아서 ‘빅뱅’ 정책을 내놔야 한다”고 말했다. 참 어려운 주문이다. ‘낫과 망치’를 들었다가 힘 없이 내려놓고 건설사 구조조정 하나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현 정부의 능력을 손 교수는 과대평가하고 있다.
시장 실패가 초래한 현재의 위기는 정부가 풀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정부 자체가 갈팡질팡, 쩔쩔매고 있다. 비상시기에 걸맞은 발상의 전환으로 이 난국을 헤쳐나가야 한다. 나 미네르바는 사이버 순교자답게 이 한몸 바쳐 난국이 풀릴 수 있다면 목숨이라도 던지겠다. 꼭 던지겠다는 게 아니라 원칙이 그렇단 얘기다.
한경닷컴 박세환 기자 gre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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