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3대 도기 '심수관窯' 14대 심수관옹 "한글 간직한 덕에 일본서 400년 뿌리내려"
"요즘은 매일 밤 꿈속에서 한국을 찾아갑니다. "

지난 주말 일본 가고시마현 심수관요(窯)에서 만난 14대 심수관옹(83)은 근황을 묻자 할아버지 나라에 대한 그리움으로 답을 대신했다. 지난해 이후 기력이 떨어졌다는 심옹은 "인간은 나이가 들수록 고향을 찾게 돼 있다" 며 "지난 5월 선조의 고향인 남원시로부터 명예시민증을 받을 때는 눈물이 쏟아졌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도자기 명인으로 꼽히는 14대 심수관은 일본 내 3대 도자기 브랜드로 평가받고 있는 사쓰마도기의 본가를 대표하는 장인이다. 임진왜란 직후인 1598년 왜군에 끌려온 도공 심당길이 1대 선조다. 12대째부터는 경지에 도달한 장인은 이름 자체를 세습하는 일본의 전통에 따라 후계자들은 '심수관'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심수관요는 410년 동안 한국 자기의 전통을 살리면서 일본화에 성공했다. 일본도 불황이지만 국내외에서 심수관요의 평판이 갈수록 높아져 요즘엔 1주일 매출이 1억5000만엔(약 23억원)을 넘어설 정도로 사업적으로도 대성공을 거두고 있다.

"온갖 어려움 속에서 14대에 걸쳐 심수관요가 번성할 수 있었던 비결은 선조들의 지혜를 계승,발전시킬 수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 심옹은 심수관요의 뿌리가 한국임을 당당히 밝히면서도 소비자들로부터 사랑을 받는 비결을 묻자 "조선인들은 난관을 극복하는 끈기 있는 민족"이라며 "교육을 통해 조상의 지혜를 전승하고,새로운 시대를 여는 창조력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심수관요 곳곳에는 심씨 일가의 교육에 대한 열기가 배어 있었다. 선조들의 유품과 도자기를 보존해 놓은 전시실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자료는 후손들에게 '배움'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한글 고어체로 쓰여진 책에는 "하루도 학습을 게을리하지 말고,열심히 공부하라"는 내용이 들어 있다. 1대 선조인 심당길은 왜국으로 끌려오는 처참한 상황에서도 고향의 흙과 유약,한문과 한글책을 배 밑창에 숨겨 왔다고 한다.

심씨 일가는 자녀 교육으로도 유명하다. 좋은 교육을 받아야 사회를 이해할 수 있고,그 사회를 알아야 시대에 어울리는 훌륭한 도자기를 만들 수 있다는 철학에서다. 13대 심수관은 명문 국립대학인 교토대 법학부를 졸업했으며,14대 심수관 역시 명문 사립인 와세다대 정경학부를,아들도 와세다대 정경학부를 졸업한 뒤 1999년부터 15대 심수관으로 도공의 길을 걷고 있다. 심옹은 "일본으로 건어온 선조들이 이국 땅에서 뿌리를 내릴 수 있었던 것도 문자와 정보를 갖고 있어 다른 일본인들보다 지적으로 앞설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누구나 살다 보면 난관에 부딪치지만 나는 어려움을 겪을 때는 험난한 타국 땅에 정착한 선조들을 생각하면서 마음을 추스르곤 합니다. " 불편한 몸으로 많은 시간을 내 지나온 인생 역정을 설명해준 14대 심옹은 "세계적으로 경제가 어렵지만 한국인들은 끈기가 있어 잘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고 낙관했다.

가고시마=최인한 기자 jan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