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극적 안락사' 첫 인정 의미.각계 반응
의료계 "호나자의 선택권 인정 의미있어"
종교계 "산소호흡기 떼는 건 안락살해"

법원이 28일 식물인간 상태인 환자의 존엄하게 죽을 권리를 법률적으로 허용함에 따라 '존엄사'에 대한 사회적 논쟁을 촉발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생명권보다 자기결정권 우선

법원이 인간의 생명권뿐만 아니라 자기결정권도 존중해야 한다는 판단을 내렸다는 데 의미가 있다. 인간의 생명권은 비록 헌법에 명문화된 규정은 없지만 지금껏 우리 사법체계에서 자연법적인 권리이자 헌법에 규정된 모든 기본권의 전제로 기능해왔다.

이런 견지에서 2002년 대법원은 중환자실에서 의식이 회복되고 있는 환자를 치료비가 없다는 이유로 죽을 것임을 뻔히 알면서도 인공호흡장치가 없는 집으로 퇴원시킨 가족들과 의사들에게 각각 살인과 살인방조죄에 해당된다고 판단했었다. 병원들은 이런 판례를 근거로 환자와 가족들의 연명치료 중단 요구를 거절해 왔다.

재판부는 이번 판결에서 회복 불가능한 환자에 한해 본인이 원한다는 것이 인정된다면 존엄하게 죽을 권리를 인정했다. 즉 회복 가능한 환자가 치료 중단을 요구했다면 생명권을 보호해야 하겠지만 의학적으로 치료 자체가 더 이상 무의미한 환자가 치료 중단을 요구한다면 생명권보다 존엄하게 죽을 자기결정권을 인정해줘야 한다는 의미다. 보라매병원 사건에서의 피해자는 회복 가능한 상태였지만 김씨는 회복 불가능한 상태이므로 자기결정권을 인정해야 한다는 취지다.

◆찬반 논란 가열


해당 판결에 대해 의학 전문 변호사들은 대체로 긍정적인 입장이다. 의학의 발달로 회복 불가능한 상태인 환자에게 생명연장 행위를 지속하는 것은 본인은 물론 가족에게도 고통스러운 일이라는 것이다. 의사이자 변호사인 법무법인 의성의 김연희 변호사는 "회복 불가능한 환자들이 병원에서 죽음을 맞이하면 객사한다는 생각에 집에 가서 죽음을 맞이하고 싶어하는 경우를 많이 봤지만 '보라매병원' 사건 이후 법적인 책임이 두려워 의사들이 이를 허용하지 않았다"며 "환자 개인의 권리를 인정해줬다는 측면에서 큰 의미가 있는 판결"이라고 밝혔다.
'존엄하게 죽을 권리' 논쟁 본격화

종교계에서는 보다 적극적으로 반대의사를 표명했다. 가톨릭 신문의 이창명 신부는 "천주교에서는 뇌사상태가 아닌 환자에 대해 산소호흡기 등 일상적인 치료를 중단하는 것을 '안락살해'로 표현하고 있다"며 "식물인간 상태인 환자에게 과도한 의료집착 행위는 중단해야 하겠지만 식물인간 상태에서 회복될 확률이 1%라도 있다면 기본적인 치료를 중단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향후 재판은


이번 판결로 김씨의 산소호흡기가 당장 제거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법원이 가집행 조항을 판결 주문에 포함시키지 않아 확정 판결이 나야 집행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판결문을 받은 뒤 피고인 연세대학교 측이 2주일 이내에 항소하지 않으면 확정 판결이 된다. 연세대학교 측은 아직 항소 여부를 결정하지 않았지만 만약 항소한다면 존엄사에 대한 판결은 대법원의 확정 판결이 있기까지 논란이 계속될 전망이다.

박민제 기자 pmj5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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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락사=크게 적극적 안락사와 소극적 안락사로 나뉜다. 소극적 안락사는 존엄사라고도 한다. 소극적 안락사 혹은 존엄사는 회복이 불가능한 환자에게 인간답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생명 연장의 조치를 중단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산소호흡기를 제거하는 등의 일이다.

이에 반해 적극적 안락사는 환자의 고통을 없애기 위해 직접 치사량의 약물 주사 등을 통해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살인의 범주로 간주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