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광공업 생산이 급감하고 물건은 팔리지 않으면서 실물경제 침체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28일 통계청이 발표한 10월 산업활동 동향에 따르면 국내 광공업 생산은 경기 위축으로 13개월 만에 감소세로 돌아섰고 소비가 꽁꽁 얼어붙으면서 소비재 판매액 증감률은 5년2개월만에 최저치로 곤두박질했다.

공장들은 생산을 줄여도 소비 급감 탓에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재고를 감당하기 어려운 지경이다.

재고 증가율을 12년 만에 최악의 수치를 기록했다.

이런 상황에서 설비투자는 줄어들 수 밖에 없었고, 향후 경기를 점칠 수 있는 지표인 기계와 건설 수주는 9월에 이어 각각 20% 넘게 줄면서 우리 실물경제가 빠른 속도로 가라앉을 가능성을 예고했다.

산업활동 관련 지표들이 대부분 마이너스를 보인 가운데 재고 증가율만 치솟고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미국발 금융불안의 영향이 9월부터 나타난 이래 10월부터는 실물경제를 강하게 짓누르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통계로 확인한 셈이다.

◇ 생산은 주는데 재고는 눈덩이
10월 광공업 생산 증가율은 전년 동월대비 2.4% 줄어 13개월 만에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조업일수를 감안한 지수는 7년만에 마이너스를 기록한 9월에 이어 두 달 연속으로 감소했다.

공장들이 감산에 들어가기 시작한 여파로 해석된다.

특히 조업일수를 감안한 증감률은 7월 6.1%, 8월 4.3%, 9월 -0.8%, 10월 -1.8% 등으로 글로벌 금융위기 시작 이후 매달 대폭 줄어드는 모습을 보이면서 2001년 9월의 -3.0% 이후 7년1개월만에 최악이었다.

업종별로 봐도 마이너스가 대세를 이뤘다.

기타운송장비(35.2%)와 석유정제(5.5%)를 빼면 자동차(-0.5%), 반도체.부품(-13.6%), 영상음향통신(-5.1%), 식료품(-6.7%), 섬유제품(-4.8%) 등 경기를 타는 품목들의 생산이 줄었다.

생산자 제품 출하도 부진해 전년 동월 대비 2.4% 줄면서 감소세로 전환됐다.

내수용 출하는 1차 금속, 화학제품, 석유정제 등에서 부진하면서 4.5% 줄었고 수출용도 0.7% 증가에 그쳤다.

특히 수출용 출하는 작년 10월 이후 9월까지 지난 8월 한 달만 빼고 두자릿수 증가율을 보였지만 10월에는 제자리걸음을 하면서 수출이 글로벌 경기침체의 영향권에 들었음을 보여줬다.

내수 침체에 수출 부진까지 겹치며 설상가상의 형국이다.

생산자제품 재고는 석유정제(-11.5%)와 섬유제품(-7.4%)의 감소에도 불구하고 반도체.부품(43.3%), 화학제품(31.2%), 1차금속(9.1%) 등에서 증가하면서 17.6%나 늘었다.

이런 증가율은 1996년 11월(17.8%) 이후 12년 만에 최악이었다.

생산을 줄이기 시작했는데도 불구하고 물건이 팔리지 않으면서 추가 감산 가능성이 우려되는 대목이다.

제조업의 재고/출하 비율(재고율)도 118.7%로 전월에 비해 3.6%포인트나 상승했고 제조업 평균가동률도 77.0%까지 떨어지면서 7월 79.7%, 8월 78.5%, 9월 77.3%에 이어 계속 하락했다.

경기 둔화.하강의 수렁에 깊에 빠져들고 있는 셈이다.

서비스업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10월 서비스업 생산은 전월대비 0.5% 감소했고 전년동월비로는 1.0% 증가에 그치면서 9월에 비해 증가폭이 둔화됐다.

◇ 소비.설비투자 온통 감소..경기 최악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는 현상이 두드러지면서 10월 소비자판매는 작년 동기 대비 3.7%, 전월보다 1.4% 각각 감소하면서 9월에 이어 두 달 연속으로 줄었다.

유형별로는 내구재의 경우 컴퓨터의 선전에도 불구하고 0.7% 증가에 그치고 준내구재(-5.0%)와 비내구재(-5.1%)는 모두 감소했다.

옷은 물론 차량용 연료 판매액도 줄었다.

가공식품 판매는 줄고 비가공식품의 경우 증가하는 현상도 나타났다.

소비자들이 급하지 않은 물건 사기를 꺼리고 식료품 구매에 한 푼이라도 아껴 쓰려는 움직임이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설비투자는 7.7% 줄면서 5개월만에 다시 감소세로 돌아선 가운데 증감률로 따지면 2003년 8월(-5.9%) 이후 가장 낮았다.

반도체 단가 하락에 시장 침체까지 겹치면서 어려움에 직면한 반도체장비 쪽의 투자가 줄어든 영향이 컸다.

경기 선행 지표에 해당하는 국내 기계 수주는 공공(347.4%) 부문이 크게 늘었지만 민간(-46.1%) 부문의 기계류 발주가 줄어들면서 36.7% 감소했다.

이는 2003년 3월(-46.6%) 이후 최저 수준이다.

건설 수주도 23.9% 급감했다.

건설수주 가운데 주택은 57.6%나 줄었고 발주자별로는 민간(-32.6%)이 공공(-25.6%) 부문보다 감소폭이 컸다.

신규 주택 및 재개발 수주 실적이 부진한데 따른 것이다.

이에 따라 현재의 경기상황을 보여주는 동행지수 순환변동치는 9월보다 0.8포인트나 떨어져 9개월째 하락했고 향후 경기국면을 예고해주는 선행지수 전년동월비 역시 전월대비 0.5%포인트 내려 11개월째 하락세를 나타냈다.

동행지수 순환변동치와 선행지수 전년동월비가 9개월째 동반하락한 것은 1981년 관련 통계가 작성되기 시작한 이후 처음이다.

지금의 경기가 적어도 지난 28년 사이에는 전례를 찾을 수 없는 최악의 상황인 셈이다.

◇ 전문가 "당분간 개선 기미 없다"
전문가들은 10월 산업활동 등을 토대로 경기 하강 속도가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KDI 이재준 연구위원은 "경기 하강은 누구나 예상했지만 문제는 '속도'"라며 "진행 속도가 너무 빠르다"고 말했다.

LG경제연구원 신민영 연구위원은 "경기 하강기에 나타나는 전형적인 현상들이 이어지고 있다"며 "경기는 1997년 외환위기 수준으로 악화돼 있다"고 지적했다.

삼성경제연구소 황인성 수석연구원은 "대외 여건 악화로 인한 수출 둔화 상황에서 내수 침체까지 겹치면서 실로 내우외환(內憂外患) 국면이라고 할 만하다"고 진단했다.

전문가들 대다수는 당분간 이런 흐름이 개선될 여지가 없다고 보고 있다.

KDI 이 연구위원은 "이 같은 침체국면이 반전될 계기가 당분간 보이지 않는다"며 "내년 1분기부터 마이너스 성장으로 돌아설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했다.

LG경제연구원 신 연구위원은 "현재도 경기가 악화되고 있는 국면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골이 너무 깊어지는 것 아닌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삼성경제연구소 황 수석연구원은 "향후 경기 움직임은 결국 수출에 의해 좌우될 것인데 수출은 세계 경기와 연동해 있으니 결국 세계 경제의 흐름에 따라 한국도 출렁이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서울연합뉴스) 정준영 박용주 기자 princ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