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닉 이후 마이클 루이스 지음/ 이규장 외 옮김/ 21세기북스/ 509쪽/ 1만8000원

10년전 '대수술'로 한국경제는 더 강해졌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진정되기는커녕 더 확산되면서 금융시장이 혼란에 빠져 있다. 글로벌 헤지펀드들이 유동성 확보를 위해 무차별적으로 국내 주식을 팔고 달러화 확보에 나서면서 원.달러 환율은 1500원을 돌파하고 코스피도 1000선에서 등락을 거듭하고 있다.

<패닉 이후>(원제 Panic.The Story of Modern Financial Insanity)는 1980년대 이후 가장 참혹했던 네 번의 위기 속에서 시장과 투자자들이 겪은 금융패닉 이야기를 담고 있다. 1부에서는 1987년 10일19일 미국의 주가가 23%나 폭락한 블랙 먼데이의 이변을 설명한다. 이 충격적인 금융 사건에 대한 뚜렷한 원인이나 결과는 찾을 수 없지만 금융시장이 원칙에서 벗어나 비이성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깨우쳐 준 최초의 사건이었다.

2부에서는 1997년 태국에서 시작된 아시아 외환위기의 태풍과 이듬해 여름 러시아 정부의 디폴트 사태,헤지펀드인 롱텀캐피털의 붕괴를 다룬다. 한국을 포함한 외환위기 당사국들에는 엄청난 고통이 뒤따른 위기였지만 이 사태를 통해 아시아 국가들은 신자유주의 체제로 전환했고 월가를 비롯한 세계 금융시장은 오히려 번성하게 됐다.

3부에서는 2000년 봄부터 허무하게 꺼져 버린 인터넷 버블을 분석했다. 이 시기에 설립된 넷스케이프 야후 등 닷컴기업들의 주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닷컴기업들의 신화를 지켜보면서 당시 묻지마 투기에 나섰던 이들은 닷컴 붐이 꺼질 때 처절한 희생양이 돼 버렸고,당시 우리나라도 같은 경험을 했다.

4부에서는 2007년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에서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의 현장으로 안내한다. 인터넷버블 붕괴와 9.11사태 이후 경기 불황에서 벗어나기 위한 저금리 기조에 힘입어 주택시장이 유례 없는 활황을 누린 가운데 서브프라임 모기지 시장은 급성장했다. 모기지 회사와 대표 투자은행들은 풍부한 유동성으로 파티를 벌이듯 수익성만 좇았다.

이러한 내용을 담은 이 책은 공포에 사로잡혀 이성이 마비된 투자자들이 얼마나 믿기지 않는 행동을 했는지를 되돌아보면서 탐욕과 공포에 약한 인간의 본성을 깊이 이해하도록 해 준다. 모두가 지나친 탐욕에 빠져 리스크를 과소 평가했을 때 어떤 재앙이 올 수 있는지도 극명하게 보여 준다. 천재들이 만들어 낸 첨단 금융기법들조차 완벽하게 투자자들을 보호해 주지는 못하기 때문에 앞으로 시장의 위기는 끊임없이 찾아온다는 교훈도 심어 주고 있다.

저자는 월가 투자은행에서 일한 경험과 오랜 저널리스트 경력을 바탕으로 시장의 움직임과 투자자의 본성을 날카롭게 통찰하는 베스트셀러 작가다. 이 책은 그의 글을 비롯해 금융 위기를 해부하는 석학들의 칼럼과 당시 패닉의 순간을 집중 조명한 기사를 모은 선집이다. 따라서 레스터 서로,밀턴 프리드먼,로버트 실러,폴 크루그먼,제프리 삭스,조지프 스티글리츠 등 대가들의 견해를 한꺼번에 읽을 수 있다.

그들은 모두가 공포에 사로잡혀 어쩔 줄 모르는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 냉철한 이성을 갖고 남들이 보지 못한 투자 기회를 찾도록 안내하면서 패닉에 빠진 우리에게 용기와 위안을 준다.

박덕배 현대경제연구원 전문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