車ㆍ가전 가격 추가인하 기대로 판매 급감
기업들 "각종稅 인하ㆍ할부금융 지원 시급"

"찾아오는 손님이 드물고,간혹 오는 손님도 무조건 값싼 물건을 찾은 뒤 견적만 확인하고 돌아갑니다.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서울 용산전자상가의 조립PC 매장에서 일하는 이용인씨는 "예년 같으면 연말 성수기인데, 장사가 안돼 폐업하는 점포가 늘고 있다"며 "둘러보면 알겠지만 열에 한두 집 꼴로 문을 닫았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컴퓨터 매장 이곳저곳을 돌며 가격을 확인하던 대학생 강태윤씨는 "인터넷몰보다 더 저렴한 곳이 있을까해서 와봤는 데 아무래도 값이 더 떨어질 때까지 기다리는 편이 나을 것 같다"며 돌아섰다.

◆'바겐세일 덫'에 빠진 내구재

현대ㆍ기아자동차 GM대우 등 국산차 메이커들 사이에선 '12월 대란설'이 나돌고 있다. 10월에 비해 30%까지 줄어든 이달 판매 실적을 보고 놀란 소비자들이 '불황의 골이 이 정도로 깊었나'며 다음 달엔 아예 지갑을 닫아버릴 것이라는 위기감이 판매 현장에 팽배하다.

서울 원효로의 한 자동차 판매점 직원은 "새로 출고되는 차는 100만~200만원,재고차는 1000만원까지 할인해 주지만 '다음 달엔 더 깎아주겠지'하는 기대만 많을 뿐 차를 사려는 소비자를 찾기 힘들다"고 전했다. 불황기에 잘 팔린다는 기아차 모닝과 GM대우 마티즈 등 경차들도 이달 들어 신규 계약이 줄어드는 추세다.

자동차와 가전제품 PC 등 주요 내구소비재 판매가 '바겐세일의 덫'에 빠져들고 있다. 자동차와 가전 업체들은 내수 부진에 대처하기 위해 연이어 세일에 나서고 있지만,추가 할인을 기대하며 제품 구입을 늦추는 소비자들이 많아지면서 매출이 더 줄고 있다고 아우성이다.

서울 삼성동의 한 전자제품 대리점에선 160만원짜리 40인치 LCD TV를 134만9000원에,200만원짜리 50인치 PDP TV는 160만원에 각각 내놓았지만 사려는 손님이 없다. 매장 직원은 "출고가에서 20%를 할인해 주고 있지만 값을 내려도 손님들의 반응은 시큰둥하다"며 "대형 전자유통업체들이 조만간 재고 처리를 위해 '폭탄 세일'에 나설 것이라는 소문이 돌면서 대기 고객만 많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중ㆍ상류층이 주고객인 수입자동차 업계도 비상이다. 윤대성 수입자동차협회 전무는 "이달 수입차 판매가 3000대 안팎까지 급감할 것 같다"며 "고급차,대중차 브랜드 가릴 것 없이 찬바람이 돈다"고 전했다. 한때 6400대를 웃돌던 월 판매량이 반토막날 조짐이라는 얘기다.

◆'특단의 소비유도대책 시급하다'

산업계에선 불황심리 차단을 위한 신속한 대책을 촉구하고 있다. 수출에 빨간불이 켜진 마당에 내수가 바겐세일의 덫에서 헤어나지 못하면 '제조업 가동률 하락→감산 및 구조조정 확산→실업자 양산→불황 장기화' 수순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 전무는 "중산층을 위한 세금 환급을 늘리면서 저소득층에겐 소비 정도에 따라 재래시장 상품권 등 소비와 바로 연결될 수 있는 금전적인 혜택을 줄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내놨다. 이현석 대한상공회의소 전무는 "소비세 등 간접세 인하는 상대적으로 효과가 적다"며 "소득세와 재산세 등 직접세를 내려 가계의 가처분소득을 늘리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순우 삼성경제연구소 거시연구실장 역시 "가처분소득을 늘려주되 무엇보다 정책 타이밍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국산차 업계는 정부에 할부금융 정상화 지원 및 경유차 환경개선부담금 폐지,1000cc급 경차 보유세 인하,공채매입 폐지,취득세(출고가의 2%)와 등록세(5%) 인하 등을 요청한 상태다.

미국 EU 일본 중국 대만 등은 경쟁적으로 내수부양에 나서고 있다. 지난 5월 소득세 환급 등으로 1680억달러를 지출한 미국은 1500억달러 규모의 추가 부양책을 검토 중이고 일본과 중국도 각각 27조엔(360조원)과 4조위안(800조원)의 예산을 투입해 내수 살리기에 나서기로 했다.

김수언/민지혜 기자/최창규 인턴(한국외대 2학년) soo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