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매속출…자산ㆍ펀드수 절반 '뚝'
아시아 잠재력 커 대기투자 많아

내년 2월 자본시장통합법이 시행되면 투자은행(IB) 분야에서 새로운 금융상품들을 만들 수 있게 돼 신시장이 열리게 된다. 그 중에서도 내년에 새로 허용될 예정인 헤지펀드는 한국IB가 가장 기대하는 시장이다. 글로벌 헤지펀드들이 금융위기로 투자수익률이 크게 부진해지자 환매사태가 속출, 줄줄이 청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헤지펀드업계의 구조조정으로 시장에 공백이 생겨 한국IB에 좋은 기회가 되고 있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전 세계적으로 1만개에 달했던 헤지펀드가 이미 7000개로 줄었으며, 앞으로 5000개 정도까지 급감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강창주 하나대투증권 상무는 "헤지펀드의 운용자산 규모도 잇따른 환매와 청산으로 2조달러에서 1조달러로 줄어들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헤지펀드 수익률 악화

텍사스 억만장자이자 1992년 미국 대선 후보였던 로스 페롯이 참여한 헤지펀드인 '페롯 펀드'가 청산됐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26일 보도했다. 15억달러 규모의 이 펀드는 상업용 모기지담보증권(CMBS)에 대거 투자했다가 수익률이 추락하면서 청산을 결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페트라 캐피털 매니지먼트가 운용하는 20억달러의 펀드가 마진콜(증거금 부족분 상환 요구) 위기에 처했고,구젠하임 파트너는 채무 상환을 위해 투자자들에게 3억달러의 투자금을 요청하는 등 헤지펀드들의 몰락이 잇따르고 있다.

헤지펀드 정보제공업체인 유레카헤지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달 말까지 전 세계 주요 헤지펀드의 평균 수익률은 ―12.14%에 이른다. 인도에 투자한 헤지펀드가 ―53.13%로 가장 부진하며 아시아 지역(일본 제외) 수익률도 ―26.51%에 달한다. 한국도 ―23.15%로 하위권에 머물렀다.

세계적 헤지펀드 전문 투자회사인 퍼멀그룹 홍콩법인의 조영로 이사(북아시아 영업담당)는 "헤지펀드는 수익률이 ―30%에 근접하면 고객의 환매요구가 없어도 자진해서 청산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그는 "통상 실현된 수익의 15∼20%에 해당하는 높은 성과수수료를 받는 헤지펀드 매니저들이 이를 기대할 수 없게 되자 줄줄이 청산하고 있다"고 전했다.

장석훈 삼성증권 이사는 "글로벌 금융회사들의 디레버리지(차입금 축소)가 내년 여름까지도 지속될 전망이어서 헤지펀드의 '다이어트 고통'도 이어질 것"이라며 "결국 수익률이 좋은 소수 대형 헤지펀드를 중심으로 업계가 재편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아시아 헤지펀드는 성장 잠재력 커

일반 펀드는 주가가 올라야만 수익을 올릴 수 있지만,헤지펀드는 주가가 빠질 때도 이익을 낼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를 위해 주식 채권은 물론 원자재 통화 파생상품 등 투자대상에 제한을 두지않는다. IB들은 수익을 높이기 위해 자기자본은 물론 필요하면 외부에서 자금을 차입해 투자하기도 한다.

이처럼 투자기법과 대상이 다양하기 때문에 펀드를 운용하는 매니저들은 언젠가 한번은 손을 대보고 싶은 '펀드의 종착역'으로 불리지만, 바로 이 점 때문에 물불 가리지않고 고수익을 추구하는 '투기펀드'로 오인받기도 한다.

헤지펀드가 한동안 어려움을 겪을 것은 분명하지만,이대로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특히 아시아 헤지펀드 시장은 앞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한국금융지주가 싱가포르에 설립한 헤지펀드 운용회사인 케이-아틀라스의 김병규 이사는 "글로벌IB의 몰락 여파로 헤지펀드들이 고전하고 있지만,헤지펀드는 쓰러질 시장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연기금 자산이 커지고 있는 한국 등을 포함한 아시아시장에선 안정적으로 수익을 올리는 데 헤지펀드가 큰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시장조사회사인 헤지펀드리서치의 켄 하인즈 사장은 "아시아 헤지펀드는 펀드 수로는 전체의 14%를 차지하지만 운용자산으론 5%밖에 안 된다"며 "아시아 경제규모를 감안하면 아시아 시장의 성장 잠재력이 크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아시아 헤지펀드에 투자하려는 수요는 꾸준하다. 조영로 이사는 "일본 기관투자가들의 경우 최근 수익률 부진으로 헤지펀드를 환매하고 있지만,한결같이 앞으로 기회를 보아 아시아 헤지펀드에 다시 투자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외국인투자자들은 한국엔 좋은 헤지펀드가 없다는 불만을 자주 토로한다"며 "헤지펀드를 통해 한국에 투자하려는 수요가 그만큼 많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국내 금융회사들도 준비 한창

국내 증권사와 자산운용사들은 기회를 잡기 위해 이미 준비작업에 들어갔다. 한국금융지주와 우리투자증권은 해외에서 헤지펀드를 직접 운용하고 있다.

한국금융지주의 케이-아틀라스는 지난 3월부터 1억달러로 헤지펀드 투자를 시작했다. 지난달 말까지 8개월 동안 글로벌 금융시장 위기 속에서도 달러화 기준 10%의 수익을 올렸다. 원ㆍ달러 환율 상승으로 원화로 환산한 수익률은 50%에 달한다.

우리투자증권도 1억달러를 투자해 싱가포르에서 헤지펀드를 운용하고 있다. 삼성증권은 직접 운용보다는 헤지펀드에 투자하는 '펀드 오브 헤지펀드'에 관심을 갖고 해외 헤지펀드들과 제휴를 추진하고 있다.

자산운용사들의 움직임도 활발하다.

트러스톤자산운용은 지난해 12월 싱가포르에 법인을 설립하고 해외에서 4500만달러를 유치해 헤지펀드를 운용 중이다. 이 회사 황성택 사장은 "돈을 끌어모으는 데 필요한 트랙 레코드(운용실적)와 해외 고객 기반을 쌓기 위해 싱가포르로 진출했다"며 "앞으로 눈에 띄는 실적만 뒷받침되면 한국은 물론 아시아 시장에서 기회가 많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조재민 마이다스에셋자산운용 사장은 "올해 초부터 싱가포르에서 100억원으로 헤지펀드를 운용하고 있다"며 "내년부터 국내에서도 헤지펀드가 가능해지면 적극 참여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장경영 기자 longr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