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례문을 통과하던 일제강점기 이전 도로의 실체가 드러났다.

지난 8월부터 숭례문을 발굴조사 중인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숭례문 안팎에서 조선 후기 도로면과 민가터,백자향로 등의 유물을 발굴했다고 25일 발표했다.

조사 결과 이 도로는 갈색 사질토를 6∼8차례(약 130∼140㎝) 쌓아 바닥을 다진 후 그 위에 가로 110㎝,세로100㎝,두께 10㎝가량의 얇은 돌을 덮어 노면을 포장하는 방식으로 정교하게 축조됐다. 광화문 권역과 육조거리에서 남대문에 이르는 수도의 중심도로였던 만큼 여느 도로보다 훨씬 치밀하고 견고하게 만들었음을 보여준다.

현재의 지표면보다 30∼60㎝ 아래에서 확인된 이 도로의 폭은 숭례문 밖 25m,숭례문 안 26m가량이다. 그러나 숭례문을 통과하던 도로 중앙부에서는 박석이 확인되지 않았다. 이는 1898∼1899년 전차선로를 가설하면서 걷어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고 연구소 측은 설명했다.

연구소는 또 도로 좌우에 있던 조선 후기~대한제국 시기(19~20세기 초) 민가터 3동,내부 구들시설 1기,외부 배수시설 3기도 확인했다. 숭례문 내부 북서편의 지표면 3m 아래에서는 원형 잡석 적심(주초석을 놓는 기초) 3기와 15∼16세기 분청사기편 및 백자편이 발굴됐다. 이는 임진왜란 이전의 조선 전기 건물터로 추정된다.

이 밖에 백자향로를 비롯한 백자 제기(祭器)류와 분청사기,청화백자 등 조선시대 도자기류,기와편ㆍ전돌편,일제강점기에 사용하던 외국 자기,상평통보와 일제시대 청동주화 등 다양한 유물도 출토됐다.

문화재연구소는 "이번 발굴조사를 통해 조선 후기 숭례문 주변 도로면의 높이와 축조기법을 확인함으로써 향후 숭례문 주변 지형 복원의 기초자료로 사용될 것"이라고 밝혔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