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 서현 변호사 강진원>

최근 통신비밀보호법(이하 통비법으로 지칭)안 개정과 관련, 여야를 비롯하여 정보기관, 시민단체 등의 의견대립이 이슈가 되고 있다.

이는 “도청”과 달리 범죄수사 및 산업기술 유출 방지 등 공익적 목적을 위해 국가기관이 법원으로부터 영장을 받아 ‘감청’하는 합법적인 행위이지만 과거 권력기관으로부터 행해진 불법 감청과 사생활 노출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 때문에 논란이 가중되고 있는 것이리라.

더욱이 개정안에는 휴대폰, 인터넷전화 등까지 감청 범위가 확대한다는 내용이 담겨있어 개인 사생활 침해 및 정치적 목적 등을 위한 불법 감청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은 상황이다.

그러나 법조계에 종사하는 한 사람으로서 좀 더 합리적인 시각에서 이 문제를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식경제부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산업기술의 해외 유출 피해규모가 최근 5년간 188조에 이르며, 특히 지난해의 경우 예상 피해액이 91조에 이르는 등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더욱이 이러한 피해규모는 기술유출 사실이 밝혀진 경우에 국한된다는 점에서 잠재적 피해액까지 고려한다면, 기술유출로 인한 악영향은 매우 심각한 수준인 것이다.

현재 해외 기술유출 방지를 위해 각 산업체에서 직원교육, 시스템 점검 등을 강화하고 있지만 의도적인 유출행위를 사전 인지하기는 많은 한계가 있다.

일례로 세계 1위를 자랑하는 조선업의 경우도 기술유출 문제가 심각한 상황이다. 얼마 전 천연액화가스선, 초대형 원유운반선 등 선박 69척을 만들 수 있는 규모의 기술을 중국으로 유출하려다 적발된 사건이 있었는데, 이러한 기술의 개발비는 무려 5,175억원에 이른다. 지금은 선박 건조능력에 있어 국내 기업의 기술력이 월등하지만 중국이 2015년까지 우리를 추월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줄기차게 조선 산업을 육성하고 있으니 안심할 만한 상황은 아닌 것이다.

조선업뿐만 아니라 반도체, LCD, 자동차 등의 분야에서 국내 기업은 세계적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기술유출이 지속 이어진다면 풍부한 자원과 값싼 노동력 등 여러 측면에서 비교우위를 가진 중국, 인도 등 신흥 경제 성장국에 추월 당할 수 있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러한 현실을 감안할 때 무조건 개인 사생활 보호 등을 이유로 휴대폰, 인터넷전화에 대한 감청을 억제하기에는 우리가 지불해야 할 경제적 비용이 너무도 크다고 보여진다. 따라서 현 시점에서는 93년 통비법 제정 당시 주요 통신수단이었던 유선전화에 대한 감청을 허용한 법 제정 취지를 재차 상기해 볼 필요가 있겠다.

다만, 이번 통비법 개정에 있어 불법 감청에 대한 억제장치 마련도 중요한 고려사항이 돼야 하며 국가기관의 감청은 반드시 법원의 영장을 토대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특히, 불법 감청과 관련된 사회적 논란은 정보•수사기관이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얻지 못하여 발생한 점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최근 44대 미국 대통령으로 선출된 오바마의 당선연설 중 “당신과 나의 의견이 다를 때, 보다 더 귀를 기울이겠습니다.”(I will listen to you, especially when we disagree)라는 부분이 있다. 이번 통비법 개정과 관련, 여야 정치인은 물론 이해관계자들이 서로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고 합리적인 개정안을 도출해 우리 경제의 기초가 되는 소중한 산업기술 등의 지적 가치를 보호하는 데에 소홀함이 없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