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EC 정상들 결의…"DDA협상 내달까지 합의 도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명박 대통령 등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21개국 정상들이 23일 열린 16차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에서 향후 1년 동안 모든 형태의 보호무역 장벽을 만들지 않겠다고 결의하고,지난 7월 결렬된 세계무역기구(WTO)의 도하개발아젠다(DDA) 다자간 협상도 다음 달 말까지 합의점을 도출키로 한 것은 각국의 오판으로 글로벌 경기 침체를 심화시키지 말자는 의지다.

각국이 '너 죽고 나 살자'는 식으로 수입을 억제하면서 자유무역을 위축시키는 '이웃국 거지 만들기(Beggar-Thy-Neighbor)' 정책을 펼 경우 공멸할 수 있다는 공감대를 형성한 것이다. 실제 1930년대 초 세계적인 대공황이 초래된 것은 각국의 보호무역주의 영향이 컸다. 1928년 당시 미국 공화당은 1000여명에 달하는 경제학자들의 반대에도 수입관세를 50%나 올리자는 강령을 채택했으며 허버트 후버 대통령이 관련 법안에 서명했다. 미국의 이런 조치에 캐나다와 유럽 국가들은 보복관세를 물리게 돼 세계 무역량이 쪼그라들고,각국 경제성장이 둔화되는 악순환의 늪에 빠져들었다.

21개국 정상들이 이날 성명서를 통해 "경제성장 둔화를 계기로 보호주의 장치를 마련하자고 주장하는 목소리가 나올 수 있지만 그런 장치는 결국 현재의 상황을 더 악화시킬 뿐"이라며 자유무역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한 것은 이 때문이다. 부시 대통령도 "국제적인 경제 보호주의가 국제적인 경제 파탄으로 이어진다는 것은 대공황이 준 가장 큰 교훈 중 하나"라며 "최근 어려운 상황을 이유로 보호무역주의가 확산돼서는 안 된다"고 역설했다.

또 부시 대통령이 전날 이 대통령과 가진 정상회담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반한(反韓) 감정 때문이 아니라 자유무역에 대한 반발로 미 의회에서 처리가 지연되고 있다"고 해명한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인과 미 민주당은 한·미 간 자동차 무역 불균형을 빌미로 한·미 FTA가 결함있는 협정이라며 반대 입장을 견지해 왔다. 1993년 체결해 이미 발효된 북미 FTA 수정도 시사한 바 있다.

21개국 정상들이 도하라운드를 조속히 타결짓자고 뜻을 모은 것도 무역개방 촉진과 궤를 같이 한다. 그동안 DDA는 미국과 유럽연합(EU) 국가 등 선진국이 농업 보조금을 더 줄여야 한다는 개발도상국들의 요구와 개발도상국들이 공산품의 관세장벽을 더 낮춰야 한다는 선진국들의 요구가 팽팽히 맞서 진전이 없었다.

21개국 정상들은 이를 감안해 성명서에 "교착상태에 빠진 WTO 무역협상의 합의점을 이제까지 합의를 바탕으로 다음 달까지 찾기로 결의한다"고 못박았다. '입장을 분명히 한다'는 뜻의 단어인 'commit'을 사용함으로써 지난 15일 주요 20개국(G20) 지도자들이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정상회의 성명서에서 '노력한다(strive)'고 밝힌 것보다 한단계 높은 의미를 담았다. 이에 따라 관련국 실무장관들은 다음 달 제네바에서 모여 '끝장내기 DDA협상'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아울러 정상들은 장기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아·태자유무역지대(FTAAP) 창설 추진 가능성과 구체적인 방안을 검토하자고 합의했다.

워싱턴=김홍열 특파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