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드레날린이 솟구치며 악당들을 소탕하던 형사 맥스 페인(마크 월버그). 그의 눈앞에 끔찍한 광경이 펼쳐진다. 사방에는 불길이 치솟고 공중에는 검은 날개의 악마들이 뒤덮는다. 그는 공포에 휩싸인 채 바닥에 엎드린다. 악마는 사람들을 고층빌딩의 창밖으로 던지거나 길거리에서 여인의 육신을 토막낸다.

그러나 이런 장면은 환영이다. 병사들의 전투력을 고취시키기 위해 만든 환각제가 부작용을 낳은 것이다. 그 약은 강력한 전의(戰意)와 파워를 주지만 시간이 흐르면 환영의 공포에 빠져들게 만든다. 맥스 페인은 한계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이 약을 직접 마시고 환영의 공포를 체험했다.

존 무어 감독의 할리우드 액션영화 '맥스 페인'은 감각적인 비주얼로 승부한다. 세계적으로 인기를 끈 동명 게임이 원작인 만큼 줄거리는 빈약하지만 영상미는 볼 만하다. 안젤리나 졸리의 액션 영화 '원티드'가 총 쏜 사람의 심력(心力)으로 총알이 휘어져 날아가는 장면을 선보인 것처럼 이 영화는 각성제로 인해 악마의 환영이 날뛰는 심리 상황을 보여준다.

이처럼 인간 심리를 액션의 비주얼로 표현하는 것은 새 트렌드라 할 수 있다. 특수효과로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장면을 그려낼 수 있게 된 기술의 성과다. 아내를 죽인 범인을 찾아 나선 맥스 페인의 이야기를 담은 이 영화의 비주얼은 현실과 비현실을 넘나든다. 화면의 배경은 1940년대 범죄영화 속 뉴욕의 거리나 '배트맨'의 고담시티를 연상시키지만 지구상 어디에도 없는 제3의 공간이다. 이는 게임 속의 무국적 공간과 일치한다.

등장 인물들도 게임처럼 평면적이고 정형화된 캐릭터들이다. 복수심에 불타는 맥스 페인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한 번도 웃지 않는다. 신약 실험 대상에서 살인범으로 변질된 악당도 치밀한 음모꾼이 아니라 단순한 동기를 지닌 인물이다.

'팬텀 오브 솔러스'의 본드걸 올가 쿠릴렌코는 맥스를 유혹하는 러시아 창녀로 등장하지만 초반에 살해된 뒤 극의 흐름에 전기를 마련하지 못한다. 오로지 맥스 페인과 악당들의 육박전과 총싸움에만 집중하고 그것을 독특하게 표현하는 데 관심을 뒀다. 20일 개봉,15세 이상.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