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환의 파도가 줄어 삶이 평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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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찬ㆍ김광림ㆍ김규동ㆍ김남조씨 등
원로시인 10명이 들려주는 노년의 삶
시를 쓰며 평생을 살아온 원로시인들이 돌아보는 인생은 어떤 모습일까. 시 전문 계간지 <시인세계>는 등단 50년을 넘긴 황금찬(90) 김광림(79) 김규동(83) 김남조(81) 김윤성(82) 김종길(82) 문덕수(80) 박희진(77) 성찬경(78) 허만하(76) 시인에게 삶과 시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그 답변을 모은 기획 '시인들의 노년,노년의 시와 삶'을 최근호에 실었다.
원로시인들은 노년의 장점으로 자연스럽게 찾아든 여유를 들었다. 김남조 시인은 "체력은 감퇴했지만 애환의 파도가 줄어들어 삶이 평온해졌다"고 말했고,문덕수 시인은 "노년이 되니 시와 시론에서 뭣이 좀 보이는 것 같다"고 답했다. 김규동 시인은 "누워서 쉬어도 되고 차 한 잔 끓여 가지고 오랫동안 명상에 잠겨도 옆에서들 곱게 봐주는 일"을,성찬경 시인은 "완전에 가까운 자유를 누리고 있다는 점"을 노년의 좋은 점으로 꼽았다. 박희진 시인은 "나무에서 무르익은 과일이 떨어지듯 삶이 무르익어 떨어진다면,그것이 바랄 수 있는 최상의 죽음"이라고 했다.
시인들은 건강관리 비법도 공개했다. 새벽녘 산책(김광림),아침 체조(김윤성),산행(문덕수) 등으로 건강을 챙기는 시인들이 있는가 하면 김종길 시인은 평온하고 담담한 시의 내용처럼 무리를 하지 않는 것으로 건강을 유지한다고 밝혔다. 김남조 시인은 "옛사람들처럼 운동 개념이나 건강관리법에 마음 쓰지 않고 자연 그대로 나날을 보낸다"고 했다.
반세기 넘게 시인으로 살면서 가장 보람 있었던 것은 무엇일까. 황금찬 시인은 한국전쟁 당시 종군시인으로 있으면서 넓은 종이에 큰 글씨로 시를 써서 벽에 걸어놓으면 피난민들이 그 시를 읽고 울며 박수치고 할 때를 꼽으며 당시 슬프도록 기뻤다고 회고했다. 문덕수 시인은 새로운 시를 쓰는 시인을 발견할 때,김남조 시인은 시인으로 살아가는 일상 자체가 보람 있었다고 말했다.
물론 가끔은 후회스러울 때도 있었다. 김규동 시인은 얼마 안되는 원고료 때문에 마음에 없는 글을 여기저기 쓴 일을,김윤성 시인은 생활고를 '후회목록'에 올려놓았다.
이들은 후배들에게 충고하기도 했다. 허만하 시인은 "세속의 바람에 휩쓸리지 말고 고독을 사귀면서 자기의 시적 문체를 다지라"고 조언했고 성찬경 시인은 "시를 쓴다는 것은 시의 길을 가는 것이니 수도하는 자세로 좀더 깊이를 추구하라"고 당부했다.
고심 끝에 절창을 뽑아내는 시인들을 사로잡은 한마디도 소개됐다. 김광림 시인은 '허정무위'(虛靜無爲:냉철한 판단을 내리기 위해 마음을 숨기며 홀로 자적하는 것)를 들었고,김규동 시인은 한국전쟁 때 비참 속에서 인(仁)이 아니면 아무것도 해결이 안 된다는 깨우침을 얻었다고 했다. 김윤성 시인은 '지이불언 소이지천'(知而不言 所以之天:알고도 말하지 않음은 하늘의 경지에 이르는 최상의 길)을,김종길 시인은 '담박영정'(澹泊寧靜:평온하고 고요한 마음으로 생각을 멀리 미치도록 하는 것)을,문덕수 시인은 '응무소주'(應無所住:어느 곳에 집착하지 않는 열린 마음)'를 가슴에 새긴 한마디라고 귀띔했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