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두현의 책마을 편지] 74년 기다린 '자금성의 황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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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薄明)에는 황혼도 있지만 여명도 있다. 이 책에서 말하는 황혼을 집어삼킨 어둠도 때가 되면 찬란한 태양이 내리쬐는 새날을 맞이할 여명으로 바뀔 것이다. 이야말로 중국인을 상찬하고 존경하는 모든 사람이 열망하고 굳게 믿는다. '
중국 마지막 황제 부의(溥儀)의 영국인 사부 레지널드 존스턴이 1934년 봄 런던에서 출간한 <자금성의 황혼>의 한 대목입니다. 연두색 장정을 두른 이 책은 '신비의 나라 중국,그 중심의 금지된 도시(자금성)'를 배경으로 한데다 저자가 황제의 스승이라는 배경까지 맞물려 초특급 베스트셀러가 됐지요.
존스턴은 중국 근대사의 34년 세월을 '어두워지고는 있지만 아직 태양이 내리쬐던 시기'(1898~1911년),'자금성의 황혼기'(1912~1924년),'황혼 뒤에 찾아온 폭풍의 밤'(1925~1931년)의 세 부분으로 나눠 촘촘하게 기록했습니다.
그가 부의를 만난 건 1919년.신해혁명으로 청 제국이 막을 내린 뒤였고 황제 자리에서 축출된 부의는 만 11세였습니다. 이후 그는 부의의 사부이자 정치고문,인생상담역으로 곁에 머물며 '늙은 제국과 힘 없는 황제의 슬프고도 쓰라린 멸망기'를 담았습니다.
마오쩌둥의 영어 교재로 더욱 유명해진 이 책에는 광서제의 무술변법과 의화단의 난에 따른 연합군의 베이징 입성,서태후의 재집권,공화국 수립,원세개의 집권,풍옥상의 쿠데타 같은 대형 사건은 물론 달라이 라마와 서태후의 만남,시력이 나쁜 부의가 안경을 쓰게 된 사연,자금성에 테니스코트가 생긴 내력,부의와 인도 시인 타고르의 만남 등이 부채살처럼 퍼져 있습니다.
볼거리도 많습니다. 황제의 친필 영어 문건,자금성 극장에서 공연된 연극 관람 초대장,벽돌담으로 내부를 쌓은 이화원 내의 광서제 거처(옥란당),부의가 저자에게 준 마지막 선물 등이 사진으로 되살아 있습니다.
격동의 역사를 섬세하게 기록한 이 책은 문학적인 감수성과 사료적 가치,대중성까지 지니고 있습니다. 서양 고전과 영시,라틴어 경구,한문 고전과 한시,궁중 용어와 당시의 중국어 표현이 혼재돼 있어 한글로 완역돼는 데 74년이 걸렸군요. 역자의 내공에 경의를 보냅니다.
(김성배 옮김,돌베개,740쪽,2만5000원)
문화부 차장 kdh@hankyung.com
중국 마지막 황제 부의(溥儀)의 영국인 사부 레지널드 존스턴이 1934년 봄 런던에서 출간한 <자금성의 황혼>의 한 대목입니다. 연두색 장정을 두른 이 책은 '신비의 나라 중국,그 중심의 금지된 도시(자금성)'를 배경으로 한데다 저자가 황제의 스승이라는 배경까지 맞물려 초특급 베스트셀러가 됐지요.
존스턴은 중국 근대사의 34년 세월을 '어두워지고는 있지만 아직 태양이 내리쬐던 시기'(1898~1911년),'자금성의 황혼기'(1912~1924년),'황혼 뒤에 찾아온 폭풍의 밤'(1925~1931년)의 세 부분으로 나눠 촘촘하게 기록했습니다.
그가 부의를 만난 건 1919년.신해혁명으로 청 제국이 막을 내린 뒤였고 황제 자리에서 축출된 부의는 만 11세였습니다. 이후 그는 부의의 사부이자 정치고문,인생상담역으로 곁에 머물며 '늙은 제국과 힘 없는 황제의 슬프고도 쓰라린 멸망기'를 담았습니다.
마오쩌둥의 영어 교재로 더욱 유명해진 이 책에는 광서제의 무술변법과 의화단의 난에 따른 연합군의 베이징 입성,서태후의 재집권,공화국 수립,원세개의 집권,풍옥상의 쿠데타 같은 대형 사건은 물론 달라이 라마와 서태후의 만남,시력이 나쁜 부의가 안경을 쓰게 된 사연,자금성에 테니스코트가 생긴 내력,부의와 인도 시인 타고르의 만남 등이 부채살처럼 퍼져 있습니다.
볼거리도 많습니다. 황제의 친필 영어 문건,자금성 극장에서 공연된 연극 관람 초대장,벽돌담으로 내부를 쌓은 이화원 내의 광서제 거처(옥란당),부의가 저자에게 준 마지막 선물 등이 사진으로 되살아 있습니다.
격동의 역사를 섬세하게 기록한 이 책은 문학적인 감수성과 사료적 가치,대중성까지 지니고 있습니다. 서양 고전과 영시,라틴어 경구,한문 고전과 한시,궁중 용어와 당시의 중국어 표현이 혼재돼 있어 한글로 완역돼는 데 74년이 걸렸군요. 역자의 내공에 경의를 보냅니다.
(김성배 옮김,돌베개,740쪽,2만5000원)
문화부 차장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