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발 금융위기가 실물경제로 옮아붙으면서 기업 구조조정이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일각에서는 그동안 구조조정을 소홀히 한 것이 기업 부실을 키운 요인으로 꼽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 정책의 무게는 구조조정보다는 자금 지원에 쏠려있다는 것이다.

건전성 악화와 자금난에 직면한 은행들은 기업 지원에 소극적인 반면 정부까지 나서 은행들의 대출 확대를 채찍질하면서 기업 살리기와 구조조정이 조화를 이루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 구조조정 제대로 하고 있나


13일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금융업계에 따르면 금융기관은 모든 건설사를 대상으로 하는 대주단(채권단) 협약을 운영하고 있지만 이를 통해 구조조정에 들어간 회사는 지난 4월 단 1개에 그쳤다.

이 협약을 적용받는 건설사에 대해서는 금융기관이 1년간 채권 행사를 미루고 개별적인 판단에 따라 신규 자금을 지원하지만 건설업계는 참여를 꺼리고 있다.

대외에 유동성 위기 기업으로 알려져 영업에 타격을 받는다는 것이다.

굿모닝신한증권의 보고서를 보면 신용등급 BBB- 이상 41개 건설사의 부채비율은 189%,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우발채무를 포함한 수정 부채비율은 429%에 달할 정도로 재무 건전성에 적신호에 켜졌는데도 대주단 협약에 가입하지 않고 버티고 있으나 가입을 강제할 수단도 없다.

금융권의 신용공여액 500억 원 이상인 부실 징후 기업이 대상인 기업구조조정촉진법이 적용된 기업은 올 들어 3개에 불과했다.

올 상반기 은행권이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대상으로 새로 선정한 중소기업은 371개로 작년 동기의 66% 수준이다.

기업들이 내수 부진과 수출 둔화 등 경기 침체로 일시적 자금난을 겪는 경우도 있지만 부실도 커지고 있어 구조조정이 필요한데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정부가 건설업체의 미분양 주택 매입, 중소기업의 대출 보증 확대 등 각종 지원책만 먼저 쏟아내고 있어 구조조정이 지연되고 금융권과 기업의 잠재 부실과 모럴해저드가 심화하면서 결국 경제 전체가 어려워질 것이라는 지적이 있다.

한양대 하준경 교수는 "옥석을 가려 방만한 경영을 했거나 부실한 회사는 이번 기회에 정리해야 한다"며 "다만 구조조정을 할 때 그 파편이 다른 곳으로 튀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 기업살리기-구조조정 충돌

정부가 은행들의 외화채무에 대한 지급 보증을 계기로 중소기업 지원 확대를 요구하고 감독 당국까지 연일 대출 관행을 질책하자 은행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은 떨어지고 연체율은 올라가는 등 건전성이 나빠지고 있어 대출을 늘리기 쉽지 않다는 항변이다.

정부의 뜻대로 지원을 확대하면서 구조조정의 칼을 휘두르기도 어렵다는 입장이다.

현재 가장 큰 문제가 된 건설사들이 도미노로 쓰러지면 내수 경기와 고용 사정이 악화되고 금융권의 부실로 확산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앞장서서 총대를 메고 한계 기업을 퇴출시킬만한 은행은 없다는 것이다.

또 은행들이 대출을 회수하고 신규 자금을 주지 않는 등 여전히 지원을 꺼리고 있다고 수출기업과 중소기업들이 하소연하고 있는 상황에서 부도 기업이 늘어나면 `비 오는 날 우산을 뺏었다'는 비난을 받을 수 있다.

금융당국은 100대 건설사 가운데 우량한 곳은 빼고 대주단 협약에 가입시켜 자금 지원과 구조조정을 동시에 진행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지만 얼마나 많은 건설사가 가입할지는 불투명하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건설사뿐 아니라 모든 업종이 어려운데 은행보고 다 끌고 가라는 분위기"라며 "살릴 곳은 살리고 곪은 곳은 도려내야 하는데 쉽지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금융위 관계자는 "일시적 유동성 위기에 처한 기업들을 살리는 것이 결국 은행 건전성에 도움이 된다"며 "하지만 회생 가능성이 없는 기업은 퇴출시키고 그렇지 않은 기업은 지원하면서 구조조정도 병행하겠다는 것이 정부 입장"이라고 강조했다.

LG경제연구원 배민근 선임연구원은 "정부로서는 유동성 지원으로 연명하는 업종을 어느 시점에 구조조정할지 고민되겠지만 시장 원리에 따르면 기본적으로 한계 상황에 있는 기업은 정리해야 한다"며 "은행들이 퇴출 대상과 구제 대상을 분류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