對美접촉 앞두고 '협상력 높이기' 압박

북한이 초강경 카드를 꺼내들었다.

북한은 12일 하루 사이에 세 가지 조치를 거의 동시에 발표했다. 군사분계선을 통한 모든 육로 통행 제한과 핵시설 시료 채취 거부,남북 적십자의 판문점을 통한 직통전화 통로 차단 등이다. 군사분계선 통행 제한으로 개성공단 사업 등 남북 경협이 위기를 맞게 됐다. 시료 채취 거부로 6자회담도 기로에 서게 됐으며 직통전화 단절로 민간사업 또한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남북 관계가 총체적 위기로 치닫는 양상이다.

◆기로 선 남북관계와 6자회담

북한이 초강경 조치에 나선 직접적인 원인은 보수단체의 김정일 체제를 비판하는 삐라사건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삐라는 북한의 체제 안정과 관련된 매우 민감한 문제인데 우리 정부가 소극적으로 대응했다고 보고 강경조치를 취한 것이란 분석이다. 물론 6자회담과 대미 접촉을 앞두고 긴장감을 고조시켜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카드라는 해석도 있다.

북한의 이번 조치로 남북 당국 간 실질적 대화는 물론 관광객 박왕자씨 피살을 계기로 금강산 관광이 중단된 지금 근근이 남북 교류의 버팀목 역할을 해온 개성공단 사업마저 불투명해졌다. 비록 북한이 남북 간 통행을 전면 차단하지 않더라도 제한적 출입 통제 조치만으로도 80여개 입주 기업들이 입을 타격은 크다. 출입 제한 강화로 기업활동에 어려움이 커지는 것은 물론 장래의 불투명성 확대로 주문 취소 사태가 줄을 이을 수 있어서다. 북한도 이 점을 충분히 활용하며 대남 공세를 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여기서 그치지 않고 남북 통행의 전면 차단 조치를 취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 경우 제품을 생산해도 반입할 길이 없어지기에 효과는 공단 폐쇄와 같다는 분석이다. 현재로선 북한이 '1차 시한'으로 설정한 12월1일까지 20일 가까운 시간이 있는 만큼 양측이 상황 타개를 위한 노력을 전개함으로써 반전을 시도할 수 있지만 전망이 밝지만은 않다.

여기에 북한이 북핵 검증의 핵심인 시료 채취를 거부함에 따라 6자회담도 고비를 맞게 됐다. 미국의 테러지원국 해제가 시료 채취가 가능하다는 판단하에 취해진 조치인 만큼 시료 채취가 불가능한 것으로 드러나면 6자회담은 난관에 처할 수밖에 없다. 특히 미국은 "신고되지 않은 시설에 대해서는 상호 동의에 의해 접근한다"면서 검증조치는 플루토늄 관련 시설뿐만 아니라 우라늄 농축과 핵확산 활동 등에도 모두 적용된다고 밝혔지만 북한은 "검증 대상은 영변 핵시설"이라고 반박,향후 협상의 난관을 예고했다.

이달 내 개최가 추진되던 6자회담은 당분간 열리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내년 1월 오바마 행정부 출범 전까지는 비핵화 2단계(불능화 및 신고)를 대부분 마무리한다는 구상도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 입장

우리 정부는 유감을 표명하면서 대화 재개를 촉구했다. 김호년 통일부 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통해 "북한이 통행 제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힌 데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북한이 이런 조치를 실행하게 된다면 그동안 쌓아온 남북관계 개선 노력에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이명박 대통령은 이날 중앙언론사 논설실장단 오찬간담회에서 "기다리는 것도 때로는 전략"이라고 말했다. 이는 북한의 조치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상생과 공영,대화라는 큰 틀의 원칙을 갖고 대북문제를 당당하게 풀어가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해석된다.

임원기 기자 wonk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