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색 가득한 주식시세표를 보며 한숨을 짓다 '경제가 안 좋아지면 극장이 잘 된다'는 말이 떠올랐다.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은 서민들은 가장 먼저 여가생활비를 줄이기 때문에 여행이나 문화생활보다 상대적으로 비용이 덜 드는 극장을 찾기 때문이다. 연인들도 돈을 덜 들이고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극장을 데이트 코스로 선택한다. 여기서 경제와 영화가 관련된 또 한 가지 속설이 있다.

'경제가 어려우면 액션과 진한 애로영화가 잘 된다는 것'이다. 경제가 안 좋으니 일상생활에서 받는 많은 스트레스를 액션 영화를 보며 푼다는 논리다. 그런데 진한 멜로영화가 잘 되는 이유는 이해가 잘 안 된다.

올해도 우리 살림살이가 어렵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야한 영화가 좀 있었을까? 올해 개봉한 한국영화를 돌이켜보니 고작 봄에 개봉한 '가루지기' 정도다. 제작자들과 이야기를 해보면 분명 야한 영화 시장이 있다고들 한다. 하지만 말뿐이지 제작은 하려 들지 않는다. 영화보다 더 진한 '야동'이 인터넷에 떠돌기 때문이다. '혹시 스타급 배우가 출연하면 모를까'라는 단서를 달지만 스타급 배우들은 애로영화에 출연하기를 꺼린다.

그간 스타급 배우들이 진한 러브 신을 보여준 경우가 왕왕 있었다. '해피엔드'의 전도연,'얼굴 없는 미녀'의 김혜수 등이 그렇다. 당시 영화를 위해서 과감히 선택한 이들에게 박수를 쳐줬고,영화를 보면 그런 과감한 수준의 노출이 필요한 장면이 있었다.

이들 영화가 개봉할 당시 영화 자체에 대한 관심보다는 이들의 노출 수위에 더 관심을 가졌다. 당시 두 배우의 마음이 얼마나 상했을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기대 반 호기심 반을 갖게 했던 영화 '가루지기'는 '변강쇠'와 함께 제목만으로도 야릇한 상상을 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열고 보니 별로였다. 진하지도 않았고,가루지기전 특유의 해학도 부족했다. 그리고 한참을 지나서 김민선이 조선시대 풍속화가 혜원 신윤복으로 분한 '미인도'가 곧 개봉한다.

영화 카피가 '붓끝으로 전하는 조선 최초의 에로티시즘'이다. TV에서 '바람의 화원'을 방영하고 있지만 영화는 신윤복의 애정 행각에 더 관심을 갖고 있다. 김민선이 올 누드로 촬영에 임했고,러브 신도 꽤 진하다고 한다. 물론 관객들은 그것만 바라지는 않는다. 아직 '미인도'를 보지 못했지만 관객들이 극장까지 찾아갈 때는 노출 외에 재미있는 이야기를 원한다. 한국 애로영화들은 이야기가 충실하지 못한 채 벗는 장면이 나오니 그 색(色)스러움의 강도도 떨어졌다. 제발 오랜만에 나온 '미인도'가 그 기대치를 만족시켜 줬으면 좋겠다. 주식시세표를 빨간색으로 물들일 만큼 후끈 달아오르는 영화가 나온다면 얼른 보러 갈 텐데 말이다.

<이원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