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의 이동
그렉 클라이즈데일 지음│김유신 옮김│21세기북스│424쪽│1만8000원



청소년의 성장기를 주제로 한 영화 중에 '싸움의 기술'이라는 작품이 있다. 영화 줄거리는 주인공이 싸움을 잘하는 '지존'에게 늘 괴롭힘을 당하고 굴종을 강요당하다가 싸움의 기술을 터득해서 그를 이기고 학교를 평정하는 이야기다.

약자가 강자를 꺾는 이야기의 반전에 관객들은 통쾌함을 느낀다. 영화에서처럼 세계 경제에서 약소국이 강대국을 이기고 새로운 '지존'으로 등극하는 일이 가능할까? 그러기 위해서는 어떤 싸움의 기술을 터득해야 할까?

그렉 클라이즈데일 교수는 <<부의 이동>>에서 '무역을 통해 신제품이나 신생산 기술이 선진국으로부터 후진국에 전해지면 국가들 사이에 기술격차가 궁극적으로 없어져서 선진국과 후진국의 위치가 역전될 수 있는가'에 대한 대답을 동서양의 역사자료를 바탕으로 제시하고 있다.

국제무역의 관점에서 보면 13세기부터 경제패권은 중국과 인도로부터 포르투갈과 에스파니아를 거쳐 네덜란드로,그 다음은 영국으로,세계2차 대전 후에는 미국으로 이동했다. 저자가 설명하는 경제패권 이동(부의 이동 )은 버논 교수의 '제품수명주기설'에 근거한 국제무역이론과 맥을 같이한다. 경제패권국을 따라잡고자 하는 후발국가는 선발국가의 기술을 모방하는 과정을 통해 기술역량을 축적한다. 역량과 경험축적이 이뤄지면 패권국보다 한 단계 높은 기술혁신을 이루고 경쟁력의 우위를 확보해서 새로운 패권국으로 등장한다.

경제패권 이동의 역사는 우리에게 두 가지 교훈을 준다. 첫째 과거부터 무역과 세계화는 지속적인 성장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요소라는 점이다. 그러나 산업경쟁력이 없는 무역은 지속적인 부의 축적을 어렵게 한다. 포르투갈과 에스파니아는 다른 나라들과 달리 산업기반 없이 해운기술에서의 우위를 바탕으로 세계패권을 잡고 교역을 통해 국부를 축적했다. 이 나라들은 해운기술에서 경쟁력을 잃자 경제적으로 영원히 회복할 수 없는 지위로 떨어졌다.

네덜란드는 해운기술에서 경쟁력을 확보했을 뿐만 아니라 무역을 이용해서 산업에서도 경쟁력을 확보했다. 네덜란드는 영국에 무력으로 대서양의 해운독점권을 잃었지만 산업경쟁력이 있었기 때문에 포르투갈이나 에스파니아와 같은 급격한 쇠퇴의 길을 걷지 않았다.

둘째 후발국으로부터 경제패권을 방어하고 유지할 수 있느냐의 관건은 올해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폴 크루그먼의 주장과 같이 경제패권국가가 지속적인 기술혁신을 이뤄 후발국과의 기술격차를 계속 유지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13세기의 중국이나 산업혁명 후의 영국 같이 오랫동안 앞선 기술력을 가지고 있던 나라들은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과거에 집착하는 경향을 갖는다. 이들 국가의 기업가들은 축적된 부를 산업에 재투자하기보다는 토지 구입이나 사회적 지위와 같은 비생산적 일에 투자를 한다. 한때 혁신의 선봉장이었던 숙련공은 기득권 세력이 돼서 혁신 저항세력으로 변하게 된다. 이런 요인들이 패권국들이 지속적으로 경쟁력을 유지하는 것을 어렵게 만든다.

그렉 클라이즈데일 교수의 <<부의 이동>>은 경제사 분야에서 희귀한 무역사(해운사)와 산업사를 탐구했을 뿐만 아니라 서양 경제사 일변도의 연구 풍토에서 중국 인도 일본과 같은 동양 경제사를 분석했다는 점에서 아주 귀한 책이다.

최근의 세계 경제위기는 기존의 경제패권국인 미국의 지위 변화를 점치게 한다. 이런 중대한 시점에서 이 책은 세계 경제정세 변화를 이해하고 예측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 권명중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