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일석 <올림푸스한국 사장 isbang@olympus.co.kr>

2008년도 두 달이 채 남지 않았다. 오랜만에 여유를 갖고 최고경영자(CEO)로서의 지난날들을 반추하던 중 발 끝에서 느껴지는 폭신함에 내려다 보니 노랗고 붉은 낙엽들이 한가득이다.

날씨 기복이 심한 봄날 어렵사리 여린 싹을 틔우고,왕성한 여름철 내내 시퍼런 물결로 넘실거림을 자랑하는 잎사귀들은 가을을 맞아 붉고 노란 옷을 입고 한껏 뽐낸다. 그리고 작별을 고하는 낙엽이 돼 뒹굴다 겨울 동안 비옥한 거름이 된다. 순환하는 자연의 연결고리에서 소생을 중단하고 또 다른 소생을 준비하며 가을이 만들어낸 낙엽은 처음과 끝,평정,기회,도약 등 많은 의미를 부여하며 현대인들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느림에 대한 동경'을 끄집어낸다.

현대를 사는 우리 삶은 속도가 가치를 결정하는 속도 경쟁에 길들여져 있다. 최고 가치를 속도에 두고 앞만 보고 달리다 보니 쉽게 지치고 여유가 없어지고,각종 폐해가 심심치 않다. 초심 잃은 결과물,원·투·스리 단계를 밟지 않은 성급함,평정심 잃은 과욕과 자만심으로 사상누각(沙上樓閣) 또는 과유불급(過猶不及)의 누를 범하게 된다. 무조건적인 속도가 조급증을 유발하고 그 뒤에 불안이 내재해 최근 유행처럼 번지는 우울증으로 발병하는 것이리라.무조건적인 속도나 타인을 의식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내 자신이 가장 잘 다스릴 수 있는 '나만의 속도'를 만드는 것이 필요함을 깨달아야 한다.

필자도 CEO로 경영활동을 하면서 조급함에 대한 유혹이 적지 않았지만 회사 설립 때의 초심을 잃지 않으려 노력했다. 상황과 순리를 거스르지 않는 범위 내에서 속도를 냈기에 조급과 타협하지 않고도 목표보다 앞당겨 실현하는 경우가 많았다. 주변 상황에 휩쓸리기보다는 확고한 목표를 세워 실천하려는 의지와 노력을 통해 오히려 속도를 주도했기 때문이리라.

가을도 어느 새 막바지에 이르렀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팔랑팔랑 떨어지며 속도감을 연출해내는 낙엽의 사이클,조용한 내면의 울림에 귀 기울이는 자신 주도의 삶을 훈련해보자.사회 전반에 독이 아닌,약이 되는 속도의 공감대를 확산함으로써 우리 사회가 좀 더 풍요롭고 안정적인 방향으로 발돋움하는 데 큰 보탬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