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가 `1등 공신'.."인종장벽 철거"
美선거지도 `레드(공화당)'에서 `블루(민주당)'로

"이변은 없었다."

인종 투표로 불리는 `브래들리 효과'도 큰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미국인들은 `변화(Change)'를 위해 최초의 흑인 대통령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지난 8년 조지 부시 대통령 정부하에서 누적돼온 미국 유권자들의 불신이 혐오로까지 발전하면서 그대로 표로 연결된 것이다.

부시가 버락 오바마 후보 당선의 1등 공신이 돼 버린 셈이다.

특히 임기 막판 부시를 완전히 식물 대통령으로 만들어 버린 월가발 금융위기는 공화당 존 매케인 후보에게는 백악관과의 거리를 더욱 멀어지게 만든 결정적 한방이었다.

미 CNN 방송이 투표를 마치고 나온 유권자를 상대로한 이날 출구조사에서 표심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친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경제 문제였다고 응답한 사람이 62%로 나타난 것은 그 분명한 증거다.

또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냐, 최고령 대통령이냐를 묻는 질문에서 나이가 인종 보다 투표에 더 중요한 판단 요소가 됐다고 응답한 사람이 두 배를 넘었다.

뉴욕타임스는 "불과 2년전만 해도 상상조차 하기 힘들었던 일이 벌어졌다.

미국인들이 첫 흑인 대통령을 선택함으로써 과거 미국 정치의 인종 장벽은 철거됐다"고 선언했다.

신문은 특히 "이는 높은 투표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평가했다.

인종 투표는 오히려 흑인들의 오바마 몰표와 히스패닉 유권자들의 공화당 등돌리기로 표출됐다.

각 언론사 조사 결과 흑인들은 10명 가운데 9명이 오바마에게 표를 던진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에서 무시할 수 없는 유권자 파워를 지닌 히스패닉이 지난 4년 부시 행정부의 불법체류자 단속 강화에 대한 반발로 등을 돌리고, 유색인종 투표에 동참한 것도 오바마에게 유리한 선거지형을 만들어 줬다.

플로리다 선거에서 오바마가 우위를 보인 것은 4년전 부시를 압도적으로 지원했던 히스패닉계가 돌아섰다는 반증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전국 득표율에서 오바마가 기대에 못미치는 결과를 얻은 것은 백인 부동층의 `흑인 대통령에 대한 망설임'으로 읽혀졌다.

선거일 직전까지 8-10% 포인트 안팎의 압도적 우세를 보였던 오바마는 정작 실제 득표율(현지시간 저녁 12시현재)에서는 간신히 50%를 넘겨, 매케인과 불과 4% 포인트 안팎의 차이만 나타냈다.

전체 유권자의 10%에 달하는 첫 투표 유권자층에서 압도적 우위를 보인 것도 오바마의 승인으로 꼽힌다.

젊은층의 `변화' 열망을 투표소까지 견인해 낸 것이다.

CNN 출구조사 결과 첫 투표자 가운데 72%가 오바마를 지지했고, 매케인 지지자는 27%에 불과했다.

부통령 러닝메이트 선택도 표심에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

선거 과정에서 끊임없이 제기됐던 새라 페일린의 자격 공방은 출구조사 결과 페일린이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는 응답이 60%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선거를 통해 미국의 선거지도 역시 그 색이 달라지게 됐다.

미국 언론들이 접전주로 분류했던 펜실베이니아, 미주리, 버지니아, 플로리다, 오하이오, 노스캐롤라이나, 콜로라도, 네바다 등 8개의 접전주들 가운데 막판까지 접전을 펼친 노스캐롤라이나, 미주리 등을 제외한 상당수가 일찌감치 오바마의 품으로 넘어갔다.

이들 주는 펜실베이니아를 제외하고는 모두 지난 두 번의 대선에서 부시와 공화당의 손을 들어줬던 붉은색(공화당 지지) 주들이다.

특히 오하이오주의 승리는 매케인에게 결정타였다.

선거인단 20명의 대형주이자 전통적인 경합지역이면서, 공화당후보들 가운데 오하이오에서 패배하고 대통령에 당선된 후보가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상징성을 지닌 이 곳 선거구에서 오바마는 53대 45로 우위를 보이면서 일찌감치 판을 접수했다.

또한 매케인이 선거 막판까지 최대의 공을 들였던 펜실베이니아에서 오바마가 대승을 거둔 것도 의미가 컸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매케인은 펜실베이니아에 모든 힘을 쏟았지만, 그것으로도 충분치 않았다.

오바마는 민주당 경선때 이 곳에서 힐러리 클린턴에게 패한 뒤 이 곳을 자신의 선거운동의 변환점으로 삼았다"고 지적했다.

오바마.매케인 두 후보는 자신들의 텃밭에선 완승을 거뒀다.

일리노이주 상원의원인 오바마는 자신의 지역구에서 61대 38로 매케인을 멀찌감치 따돌렸고, 애리조나에서는 매케인이 54대 45로 오바마를 눌렀다.

커뮤니티별로 인종.계층 등의 소그룹을 조직해 파고들었던 `오바마를 위한 연대' 지역조직의 위력도 돋보였다.

오바마가 하버드 법대를 졸업한 뒤 시카고 지역 빈민활동가로 일했던 경험이 경합주의 조직기반 강화에 큰 힘이 됐던 것이다.

초경합주였던 버지니아에서의 승리는 필요한 지역에서는 반드시 이기겠다는 오바마의 `선택과 집중' 전략이 주효했음을 보여주는 좋은 예다.

(뉴욕연합뉴스) 김현재 특파원 kn0209@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