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교수로 변신한 안철수연구소의 창업자 안철수씨가 지난 10월 서울대의 '기술경영의사결정론' 강의에서 학생들에게 워런 버핏은 어떤 사람이기에 성공했느냐고 대뜸 물었다. 버핏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학생들이지만 선뜻 대답을 못했다. 그러자 안철수씨는 "느려 빠지고, 남을 잘 믿고, 착한 사람이라면 기업가로서 성공할 수 있을까요?" 라고 재차 물었다. 학생들이 그렇지 않을 거라는 표정을 짓자 그는 '버핏은 느리기에 장기투자를 했고, 남을 잘 믿기에 아랫사람을 신뢰했으며, 착하기에 기부에 앞장섰다'고 말했다. 고정관념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최근 한국경영과학회 주최 강연에서도 안철수씨는 경제 전체의 포트폴리오 차원에서도 그렇고,고용창출,그리고 대기업을 위해서도 중소기업은 중요한데 왜 한국에선 기업가정신이 쇠퇴하는지 물었다. 그는 남들이 흔히 말하는 '사업기회가 적다''수익이 낮다'는 요인보다 우리 사회에서 '성공 확률이 낮다''위험이 높다'는 요인에 더 주목했다. 열악한 인프라,실패를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이 더 큰 문제란 얘기였다.

정부가 기업인의 기(氣)를 살려보자고 기업가정신 주간을 선포하고 국제 컨퍼런스를 열었다. 그 자리에서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이 오늘의 한국경제를 있게 한 이병철, 정주영 등 창업세대를 회고하며 지금의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선 '다시 기업가정신'이라고 역설해 참석자들에게 큰 감동을 줬다. 문제는 과거가 아닌 오늘의 시점에서는 이 대목을 과연 어떻게 해석할 것이냐다.

그날 참석한 해외 석학들이 던진 말들에서 답을 찾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위키피디아의 창시자 지미 웨일스는 한국경제에 차별화된 기업가정신,창조적 기업가의 출현이 필요하다고 했다. 유럽의 피터 드러커로 불리는 헤르만 지몬은 중소기업을 존경하는 사회적 분위기,야망이 큰 젊은 기업가들의 배출을 우리에게 권고했다. 그리고 미국 컬럼비아대 아마르 하이드 교수는 한국의 기업가정신은 기존의 확장이냐, 새로운 모색이냐는 도전에 직면해 있다면서 시장과 기술이 과거와 달라진 만큼 새 스타일의 기업가정신이 요구된다고 충고했다.

이들의 주장에는 근거가 있다. 계량경제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경제성장과 기업가정신 사이에는 정(+)의 관계가 존재한다. 흥미로운 것은 국민소득이 증가하려면 그에 맞춰 기업가정신의 콘텐츠도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즉 국민소득 2만달러까지는 대기업의 기업가정신만으로도 가능하지만 이를 넘어서려면 기술창업가 등 새로운 종류의 기업가정신을 가진 이들이 대거 출현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우리는 딱 기로에 서 있는 셈이다. 목숨 걸고 사명감으로 기업가를 하겠다는 사람도 있겠지만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려고, 남과 다르고 싶어서 기업가 하겠다는 사람들이 쏟아져야 하고, 내성적이고, 인적 네트워크에 취약한 사람들도 성공한 기업가가 될 수 있어야 한다면 말이다. 정부가 이들을 위한 인프라와 분위기 조성에 눈을 돌려야 하는 이유다.

생각해 보면 이는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일이다. 앞으로는 누구나 한 번쯤은 기업가로 인생을 살아야만 할 운명으로 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 시기가 대학을 가기 전, 대학 졸업 후,직장을 다니는 중,직장을 은퇴한 후 등으로 각기 다를지는 몰라도.

안현실 <논설·전문위원 경영과학 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