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위기와 세계경기의 침체 여파 등으로 한국의 실물경제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

건설사를 비롯한 기업들의 부도가 잇따르고 있으며 시중은행과 저축은행 등 금융권이 떠안고 있는 프로젝트파이낸싱(PF) 폭탄이 터지는데 대한 공포감도 확산되고 있다.

또 수출이 둔화되면서 우리 경제가 올 4.4분기 뿐 아니라 내년까지도 매우 부진한 성장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 부도기업 속출


건설, 조선 등 경기가 후퇴하고 있는 업종을 중심으로 부도기업이 잇따라 나타나고 있다.

지난달 31일에는 그동안 자금난 소문이 파다하던 중견 건설업체 신성건설이 1차 부도 위기를 간신히 넘겼다.

시장에서는 미분양 물량에 허덕이고 있는 건설업계에 `부도 도미노'의 신호탄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최근에는 경북 영주에서 최대 물놀이 시설 등 대규모 리조트 조성 사업을 벌이던 ㈜이앤씨건설이 부도 처리됐다.

철강구조물에서는 업계 2위인 한신스틸콘이 어음을 막지 못해 납품업체들의 어음 피해만 4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건설 경기 침체에다 외환 관련 충격까지 겹치면서 철강 수입업체들도 무너지고 있다.

지난달 20일 삼정제강이 최종 부도를 냈고 삼보철강이 22일부터 당좌거래가 정지됐다.

C&중공업[008400]과 C&우방[013200], 진도에프앤[088790] 등을 거느린 C&그룹은 올해 초부터 조선과 건설 부문에서 자금압박을 받아오던 중 급기야 채권단 워크아웃 신청설에 대한 조회공시를 받았다.

C&그룹은 "워크아웃 신청을 해도 채권은행단의 75% 가량이 동의를 해줘야 하는데 채권은행들의 입장이 달라 워크아웃에 들어갈지 여부도 불확실한 상황"이라며 "1천억원 정도만 지원받으면 조선 선수금이 들어오고 경영을 선순환 구조로 돌려놓을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은행권은 C& 그룹이 자금 수요가 많은 월말을 넘겼기 때문에 즉각 워크아웃을 신청하지는 않겠지만 결국 워크아웃을 신청할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시중은행 고위 관계자는 "C&에 지원할 은행이 없어서 결국 워크아웃을 신청하게 될테지만 그렇다 해도 부실이 많은 계열사도 있기 때문에 받아줄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 대기업들도 안전하지 않다


덩치가 큰 재벌 대기업들에도 경계의 눈길이 쏟아지고 있다.

업황이 계속 악화되면 대형사들도 자금난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최근 인수.합병(M&A)으로 빠르게 덩치를 키운 재계 유수의 그룹들도 유동성관련 루머를 피하지 못하고 있다.

일부 그룹은 자금난이 심각하다는 소문에 시달리면서 계열사들의 주가가 하한가로 떨어지기도 했다.

실제 일부 기업들은 '영업활동으로 인한 현금흐름'이 지난해 상반기보다 상당히 줄어 즉시 현금화할 수 있는 자산이 수백억원에 불과하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게다가 키코 계약을 맺은 중소기업들이 환율 불안 등으로 쓰러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미 태산LCD가 일찌감치 채권단 워크아웃에 들어갔고 IDH는 회생절차를 밟기 시작했으며 기타 유수의 중소기업들이 허덕이고 있다.

이런 상황을 반영해 전국 어음부도율은 9월중 0.02%로 전월 수준을 유지했지만 지방 대도시를 중심으로 어음부도율이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부산지역은 0.05%포인트 오르면서 3개월째 상승세를 보였고 대구 지역도 0.45%로 전달보다 0.12%포인트 오랐으며 대전.충남지역은 0.68%로 0.23%포인트가 뛰었다.

◇ 수출둔화 조짐..침체골 심화될 듯


내수 부진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유일한 성장동력이었던 수출 마저 둔화 조짐을 보이면서 실물경제 침체에 대한 우려를 높이고 있다.

지금까지는 수출 지역이 선진국과 신흥시장국으로 다변화된 덕분에 개발도상국과 원자재 부국으로의 수출 호조가 지속됐다.

하지만 선진국발(發) 금융위기가 전 세계 실물경기로 미치고 있고, 유가 급락으로 중동 등 자원 부국의 성장세가 주춤해지면서 수출 둔화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윤상하 LG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선진국 뿐 아니라 개도국, 중동 등 전반적으로 수출증가세가 둔화할 수 있다"며 "특히 선진국으로의 내수.소비재 수출과 개발도상국으로의 중간.자본재 수출이 모두 우려된다"고 말했다.

원자재가 급등에 따른 단가 상승 요인을 제외하면 물량 측면에서는 이미 둔화 국면에 들어섰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주요 경제연구소들도 향후 우리 경제의 위험요인 중 하나로 수출둔화를 꼽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수출증가율이 3분기 27.7%에서 4분기 14.2%로 `반토막' 나고 내년에는 8.3%에 그칠 것으로 보고 있다.

금융연구원은 내년 수출증가율을 6.1%로 더 비관적인 전망치를 제시했다.

황인성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일자리창출력 저하, 가계부채 등으로 민간소비가 살아나기 어려운 처지인데, 수출마저 꺾이면 내수.외수에서 모두 성장 동력을 상실하게 된다"며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투자 쪽에서 물꼬를 터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 "4분기 성장률 가파르게 둔화"

산업생산은 가파르게 위축되고 있다.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9월 산업활동동향'에 따르면 조업일수를 감안한 산업활동 조정지수 증가율은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해 0.8% 줄어들어 2001년 9월(-3.0%) 이후 처음으로 마이너스 증가율을 나타냈다.

현재의 경기상황을 보여주는 동행지수 순환변동치는 지난달보다 0.3% 포인트 떨어져 8개월째 하락세를 이어갔다.

향후 경기국면을 예고해주는 선행지수 전년동월비 역시 전월대비 0.2%포인트 하락, 10개월째 하락세를 나타냈다.

이는 실물경기가 예상보다 심각한 수준으로 추락하고 있다는 뜻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3분기 경제성장률은 3.9%로 한은의 원래 예상치인 4%대 초반에 비해 훨씬 낮은 수준에 머물렀다.

4분기 성장률은 3분기에 비해 훨씬 안좋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은 관계자는 "경기 둔화세가 뚜렷해지고 있는 상황"이라면서 "4분기 성장률은 당초 예상치인 3%대 중후반에 비해 낮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한은은 올해보다 내년의 경제가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보고 있다.

한은 관계자는 "올해는 상반기 성장률이 좋았기 때문에 연간 전체 성장률은 당초 예상치인 4.6%에는 약간 못미치는 수준은 될 것"이라고 말하고 "그러나 내년에는 실물경제가 더욱 나빠질 가능성이 있어 우려된다"고 내다봤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