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서 중심 도로인 장안지에를 따라 달리기를 10분여.삼성전자 중국 본사가 나온다. 22층에서 근무하는 마케팅팀 류숭 과장(30)은 내부에서 '천재'로 불린다. 그저 머리가 좋아서가 아니다. 삼성이 추진하는 '천재(S급 인재) 프로젝트'에 의해 당당히 선발됐기 때문이다.

류 과장이 삼성과 인연을 맺은 것은 2002년.베이징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나서다.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 삼성의 'S급 인재'로 선정됐다. 류 과장은 곧바로 고려대 국제경제학과로 유학해 석사 학위를 받았다. 학비와 체재 비용은 삼성이 부담했다. 이후 한국 본사의 DM총괄 마케팅팀에서 2년간 근무한 뒤 작년부터 중국 본사에서 근무하고 있다.

창조적 인재를 발굴하고 육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건 외국 기업만이 아니다. 한국 기업들도 한창이다. 선두엔 삼성과 LG 등 글로벌 기업이 서 있다. 미국이나 유럽에선 이들 기업의 현지 인재발굴 시스템이 웬만한 글로벌 기업에 뒤지지 않는다. S급 인재를 모셔오기 위해 전담 부서를 가동하고 있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들 기업의 인재 발굴은 이제 중국 인도 등 떠오르는 시장을 겨냥하고 있다. 삼성의 경우 중국에서 류 과장과 같은 인재 발굴을 위해 천재 프로젝트를 가동하고 있다. 중국의 상위 5개 대학인 베이징대 칭화대 푸단대 저장대 상하이자오퉁대에서 상위 5% 이내 성적을 낸 인재들이 대상이다.

매년 이들 학교의 인재들로부터 신청받아 8명씩 선발한다. 이들은 선발되자마자 한국의 성균관대(문과.2005년까지는 고려대)와 서울대(이과)에서 2년 동안 석사 과정을 밟는다. 졸업 후엔 한국의 삼성 본사에서 2년 동안 의무적으로 근무한다. 그 뒤로는 한국과 중국 가운데 근무지를 선택할 수 있다. '천재'들인 만큼 이들에게는 중국의 일반 직원보다 월등히 많은 급여가 지급된다.

그러다 보니 이 프로젝트에 지원하는 인재가 갈수록 늘고 있다. 작년에는 100명의 인재가 지원서를 냈고 8명이 뽑혔다. 이 프로젝트가 시작된 것은 2002년.지금까지 모두 56명이 천재로 선정됐다. 이 중 40명은 석사 학위를 받은 뒤 한국 근무(2년)를 마치고 현업에서 일하고 있다. 나머지 16명은 석사 학위를 밟고 있거나 한국에서 근무 중이다. 현업에 배치된 40명 중 한국 근무를 선택한 사람은 28명.12명은 중국에서 근무하고 있다. 이들은 마케팅담당 통신연구소 디자인연구소 반도체연구소 등에 분산 배치돼 삼성의 중국시장 공략 첨병에 서 있다.

류 과장은 "대학 졸업 후 일본 기업으로부터도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으나 삼성을 선택했다"며 "본사 인재들과 똑같은 대우를 해 줘 선택을 굉장히 잘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LG전자 중국 본사의 진후난 부장.그는 중국에서 가장 큰 가전 유통업체인 '궈메이(國美)'를 담당하는 그룹장이다. 궈메이의 중국 가전시장 점유율은 30%를 넘는다. LG에서도 가장 신경 쓰는 거래처다. 그 거래처를 현지인인 진 부장에게 맡겼다는 건 그에게 거는 기대가 그만큼 크다는 걸 반증한다. 진 부장은 "2006년 6개월 동안 LG 미국법인에 파견 근무하면서 미국의 대형 가전 유통회사인 베스트바이,서킷시티 등과 직접 거래했었다"며 "그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진 부장이 미국 법인에 파견 근무한 것은 LG 중국 본사가 2006년부터 시행 중인 '글로벌 업무 역량 제고 프로그램' 덕분이다. LG는 중국에서 채용한 현지인 중 핵심 인재를 골라 글로벌 인재로 키우기 위해 이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다. 핵심 인재로 선정될 경우 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 한국 홍콩 등에 6개월 동안 파견된다. 그곳에서 현지 직원들과 똑같이 일한다. 물론 비용은 회사 부담이다. 이 과정에서 중국에 필요한 제도나 선진 마케팅 기법을 배우게 된다. 현지 언어를 배우는 건 부차적 성과다.

중국 본사의 핵심 인재로 선발돼 선진국에서 직접 근무하고 온 사람은 지금까지 33명.이들은 진 부장처럼 핵심 부서에 배치돼 중국 업무를 이끌고 있다. LG는 점차 한국에서 파견하는 주재원 수를 줄이고 중국에서 양성된 핵심 인재로 하여금 중국 영업을 주도하도록 할 예정이다. 삼성이 될 성부른 인재를 발굴하는 데 중점을 둔다면 LG는 핵심 인재를 육성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는 셈이다.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금융회사들은 현지인을 대상으로 영업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현지 인재 확보를 위해 발벗고 나서기는 마찬가지다. 대표적인 곳이 우리은행.우리은행은 작년 11월 국내 은행 중 처음으로 중국 법인을 설립했다. 현재 8개 영업점에 300명의 직원을 두고 있다. 이 가운데 260명이 현지인이다.

역사가 짧은 만큼 우리은행은 인재 발굴과 육성을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 인재 발굴을 위해 베이징대 칭화대 난징대 지린대 상하이차이징대 옌볜대 등 6개 대학 학생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이들을 중국 영업의 핵심 인재로 끌어온다는 전략이다. 아울러 현지 직원 중 핵심 인재를 선발,한국 본점에서 위탁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장기 근속자와 우수한 성과를 낸 직원을 우대하는 보상 체계도 만들고 있다.

김희태 우리은행 중국법인장은 "2010년까지 중국 영업점을 31개로 늘릴 계획"이라며 "핵심 인재를 육성해 현지인이 영업점장을 맡도록 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창조적인 핵심 인재를 얼마나 발굴하고 육성하느냐가 떠오르는 시장인 중국에서의 생존을 좌우할 것임을 한국 기업들도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는 얘기다.

베이징=하영춘 기자 ha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