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시드니 중심 마틴플레이스 1번가. 호주 최대 금융기업 맥쿼리가 입주해 있는 시드니 시내 4개 빌딩 가운데 하나다. 사무실 안에 들어서자 책상들이 늘어서 있다. 좌우 칸막이조차 없다. "해외 커뮤니케이션을 맡고 있는 나블린 프라사드 상무를 만나러 왔다"고 말하자 한쪽 구석으로 안내한다. 어디를 봐도 일반 직원 자리와 다른 게 없다. 명함을 건네받기 전에는 그가 임원이라는 걸 깨닫지 못할 정도였다.

다문화 사회의 통합을 위해 어떠한 차이나 구분도 하지 않겠다는 맥쿼리의 경영철학은 사무실 배치를 통해 엿볼 수 있다. 맥쿼리는 직원들에게 직급과 상관없이 똑같은 사무공간을 제공한다. 상급자라고 해서 칸막이가 쳐진 넓은 공간을 차지할 수 없다. 고위급 임원이라고 방을 따로 갖고 있지 않다. 부행장급인 6개 부문 대표도 예외가 아니다. 고위급일수록 창가에 자리하는 게 일반적이기는 하다. 그렇지만 부행장이 비서와 나란히 앉아 근무하는 모습은 맥쿼리에서만 볼 수 있는 사무실 풍경이다. 부장만 돼도 일반 직원들과 떨어져 별도 공간을 갖는 일반 기업과는 다르다. 물론 니컬러스 무어 맥쿼리그룹 최고경영자(CEO)는 별도의 방을 갖고 있다. 기밀사항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리로 된 벽을 통해 직원들은 그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투명하게' 볼 수 있다. 시드니뿐 아니라 세계의 모든 맥쿼리 사무실은 이처럼 동일한 구조를 갖고 있다.

줄지어 업무를 보고 있는 임직원들의 인종적 구성도 다양하다. 유럽계 백인과 아시아계는 물론 중동 출신 임직원들이 섞여서 업무를 보고 있다. 프라사드 상무는 남태평양 섬나라인 피지 출신이다. 그는 "몇 개의 인종적 그룹이 있는지 파악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시드니 본부에만 50여개 인종적ㆍ문화적 배경을 가진 직원들이 함께 근무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임원과 직원이 모두 같은 크기의 책상에서 근무하는 것처럼 다양한 인종적ㆍ문화적 배경을 전혀 따지지 않는다는 게 맥쿼리 측의 설명이다. "그것을 파악하려는 것 자체가 차이나 차별을 두려는 것"이라고 프라사드 상무는 강조했다.

임직원들 간 차이나 구분을 두지 않는 것만으로 사회적 통합을 이끌어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맥쿼리는 다양성과 함께 '소통'을 강조하고 있다. 직원들이 서로 업무나 업무 외적으로나 충분히 교감할 수 있어야 하나의 목표를 향해 함께 갈 수 있다는 것.가장 대표적인 제도는 1년에 두 차례 직원들을 포상하는 '맥쿼리 어워드(Award)' 제도다. 이는 업무 협조를 위해 같이 일해본 직원을 추천해 포상하는 제도다.

같은 부서나 인근 부서 직원을 추천하는 게 아니다. 이메일이나 전화,출장 등을 통해 업무적으로 접촉한 다른 나라에서 일하는 직원을 추천하는 제도다.

예컨대 시드니 본부 직원이 사회공헌 활동을 위해 협력했던 중국지사 직원을 추천하는 식이다. 출신이나 문화적 배경이 각기 다른 직원들이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상대방을 우수 직원으로 추천하기란 쉽지 않다. 상대방에게 좋은 느낌을 줄 수 있을 정도로 서로를 깊이 이해해야만 추천이 가능하다. 시드니 본부 직원의 추천으로 30만원짜리 외식권을 맥쿼리 어워드 부상으로 받았다는 정완숙 맥쿼리코리아 부장은 "포상 제도를 통해 직원들은 소통의 문화를 체득하고 있다"고 말했다.

직원들의 창의성을 존중하는 것도 맥쿼리의 대표적인 기업문화다. 맥쿼리는 이를 '최소한의 규제와 최대한의 자유'라고 표현한다. 위험을 회피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는 직원들의 창의성을 최대한 존중하되 새로운 분야에 대한 과감한 투자를 허용한다는 게 골자다.

엘리자베스 콕스 커뮤니케이션 담당 매니저는 "혁신은 맥쿼리를 대표하는 단어"라며 "직원들에게 혁신적이고 창의적이어야 한다고 끊임없이 장려한다"고 말했다. 모든 직원들은 직책 구분 없이 다양한 의견을 개진할 수 있다. 상급자는 어떻게 하면 하급 직원의 의견을 투자에 반영할지를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10년 전에 맥쿼리에 합류한 존 워커 전 호주 교통부 차관이 대표적인 사례다. 경영관리 부문에서 일하던 그는 외환위기 이후 한국의 금융산업에 투자해야 한다는 판단에 따라 2001년 한국지사를 설립하자는 의견을 냈다. 당시만 하더라도 해외 지사 설립이 많지 않았던 때.그렇지만 무어 CEO는 워커의 창의성을 높이 평가해 맥쿼리코리아 회장 직책을 맡겼다.

2001년 맥쿼리가 한국에서 영업을 시작했을 때 직원은 고작 5명.이후 맥쿼리코리아는 미국인 이란인 이라크인 등 다양한 출신 배경을 가진 직원들을 충원하는 한편 90% 이상의 자산을 한국에서 유치하며 사업영역을 넓혔다. 시드니 본부는 철저하게 리스크 관리만 하면서 모든 영업전략을 맥쿼리코리아에 맡겼다. 직원들의 창의성을 존중한 덕분에 맥쿼리코리아는 올해 420명의 직원이 200억호주달러(19조984억원)를 운용하는 대형 오피스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워커 회장은 "인재는 우리의 가장 중요한 자산"이라며 "다양한 출신 배경과 소통의 조합이 맥쿼리그룹 성장의 비결"이라고 말했다.

시드니(호주)=정태웅 기자 redae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