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슨 "금융위기서 中역할 훌륭"… '美국채 사달라' 메시지?

미국의 중국 찬양론이 심상치 않다. 당장의 금융위기 해소는 물론 국제 금융질서 재편 과정에서 우군을 확보하기 위해선 2조달러에 육박하는 외환보유액을 가진 중국을 끌어안는 게 필요하다는 절박감에서다. 중국은 이런 와중에 해외 기업 사냥에 적극 나서고 있다. '엉클 샘(미국)'의 시대는 가고 차이나 달러를 등에 업은 '왕서방'의 시대가 도래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중국 찬양하는 미국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헨리 폴슨 미 재무장관은 21일 뉴욕에서 가진 미.중 관계 국가위원회 연설에서 "이번 금융위기에서 중국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며 지금까지 중국이 훌륭히 그 일을 해줬다"고 중국을 치켜세웠다. 미국이 단골로 압력을 행사해온 위안화 절상 요구에 대해서도 되레 중국을 두둔했다.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도 이날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에게 전화를 걸어 "미국은 금융위기를 극복하고 세계경제 안정을 유지하기 위한 대책 마련에 중국이 국제사회와 공동으로 노력해주기를 희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후 주석은 "중국 정부는 앞으로도 중국 국민과 전 세계인들을 향해 책임 있는 자세를 갖고 세계경제와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국제사회와 긴밀히 협력하겠다"고 답했다.

양 정상은 다음 달 미국에서 열리는 금융 정상회의 문제 등을 놓고 의견을 교환했다고 중국 관영 신화통신이 보도했다. 11월4일 미국 대선이 끝난 뒤 열릴 예정인 금융 정상회의는 G8(주요 7개국+러시아)과 중국 인도 브라질 등 주요 개도국 정상들이 참석할 것으로 알려졌다. 부시 대통령의 전화는 7000억달러의 미 금융권 구제금융 마련을 위해 중국이 미 국채를 적극 매입해주도록 희망한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해외기업 M&A 잰걸음

중국 최대 석유업체인 페트로차이나의 장제민 회장은 이날 열린 주주총회에서 "글로벌 금융위기와 기름값이 하락하고 있는 지금이 해외 생산거점과 판매망을 늘릴 수 있는 기회"라며 "해외 에너지업체 M&A(인수·합병)에 적극 나서겠다"고 밝혔다.

페트로차이나는 국영기업인 중국해양석유와 공동으로 미국 마라톤오일 인수를 겨냥하고 있다. 마라톤오일은 앙골라 유전을 보유하고 있는 회사로 최근 국제유가 급락에 따라 현금흐름이 좋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시노펙은 캐나다 탄가니카석유에 인수제안서를 냈다. 탄가니카는 시리아에서 유전개발을 하고 있다.

차이훙전자는 20억달러를 들여 TFT-LCD(박막트랜지스터 방식 액정표시장치)용 유리기판 라인 3개를 한꺼번에 깔기로 했다. 차이훙이 계획대로 내년 초 공사에 착공한다면 단숨에 미국 코닝과 일본 아사히글라스 등의 뒤를 이어 세계 5위의 생산 규모를 갖추게 된다. 이 밖에 공상은행은 미국 뉴욕과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영업을 시작했다. 세계 금융의 중심지인 월가에 중국의 은행이 입성한 것이다. 민생은행은 2억달러를 들여 캐나다 로열뱅크와 자산운용 합작사를 설립했다.

베이징=조주현 특파원 fore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