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원에 불지르고 대피해 나오는 사람들을…검거된 범인 "살기 싫어서"

이유없이 주변에 있는 사람을 해치는 이른바 '묻지마 살인'이 잇따라 발생해 시민들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

20일 오전 8시40분께 서울 강남구 논현동 D고시원에서 30대 남자가 "세상이 살기 싫다"며 고시원에 불을 지르고 도망나오는 사람들에게 흉기를 휘둘러 6명이 숨지고 5명이 크게 다쳤다. 피해자들은 대부분 고시원에 거주하는 중국동포 여성으로 전해졌다.

용의자 정모씨(31)는 이날 고시원 3층 책상에 인화성 액체를 뿌리고 불을 지른 뒤 3층 입구에서 화재를 피해 나오는 사람들에게 무차별적으로 흉기를 휘둘렀다.

정씨는 향군법 위반 등 전과 8범으로 논현역 인근 분식업점에서 배달일을 해 왔으며 평소 말이 많고 논쟁을 좋아하는 성격이었다고 주변인들은 전했다. 범행 직후 건물 옥상에 숨어 있다가 검거된 정씨는 "세상 살기 싫어 범행을 저질렀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정씨가 평소 금전적 압박에 시달려온 데다 세상에 대한 불만을 자주 토로했다는 점에 주목,이 사건이 사회 불만자의 전형적인 '묻지마 살인'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앞서 지난 8월19일에도 지나가는 행인이 아무 이유없이 살해됐다. 용의자 김모씨는 서울 홍제동 한 초등학교 앞에서 '갑자기 누군가를 죽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흉기를 준비해 지나가던 오모씨(41)의 목을 찔러 살해했다. 김씨는 2002년 전문대학을 중퇴한 뒤 5년여 동안 거의 집을 나가지 않고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 생활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7월22일에는 30대 남자가 강원도 동해시청에 들어가 "세상살이가 싫어 사람을 죽이고 교도소에 가고 싶었다"며 처음 본 여성 공무원을 살해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묻지마 살인이 계속되는 것에 대해 국가가 나서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성균 울산대 사회학과 교수는 "개인적인 분위기가 팽배한 사회적 분위기에다 경기침체 등이 맞물리면서 '묻지마 살인'과 충동 범죄가 증가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묻지마 살인'을 저지르는 사람들은 어렸을 적부터 부모나 가족으로부터 버림받아 타인에 대해 피해의식이 누적돼 있는 '사회 부적응자'인 경우가 많다"면서 "국가가 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사회 부적응에서 탈피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이재철 기자 eesang6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