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인천 강화도 바닷가에서 괴상한 광경이 벌어졌다. 노숙자로 보이는 사람들이 차례로 바다를 향해 괴성을 지르고 있었던 것.주변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인근 파출소에서는 경찰차까지 출동했다. 하지만 가장 크게 소리 지른 사람이 1등상으로 3만원을 받으면서 사건은 싱겁게 마무리됐다. 소리 지르기 대회를 연 주인공은 인천 계양구 해인교회의 이준모 목사였다. 그는 10년째 노숙자들을 위한 쉼터를 운영하고 있다. 이 목사는 종종 쉼터에 있는 노숙자들을 데리고 바닷가로 온다. 바닷가에서 마음껏 소리 지르게 하면서 과거의 아픈 기억들을 털어내도록 한다.

이 목사는 1994년 해인교회에 부임했다. 1998년 외환위기로 실직자와 노숙자가 급증하자 교회 인근에 사단법인 '인천 내일을 여는 집'을 열어 쉼터를 제공하고 자활을 돕기 시작했다. '내여집'이 지금까지 치료해 내보낸 노숙자만 1900여명에 이른다. 쉼터에 입소한 사람들이 직업을 얻어 퇴소하는 비율은 100% 가까이 된다. 복지 선진국인 일본의 공식적인 자활률은 1~2%다.

▶▶ 노숙자도 인센티브ㆍ자립률 100% 가까워

'내여집'에서 1년간 생활한 이기준씨(39ㆍ가명)는 지난달 단칸방을 마련해 그동안 헤어져 있던 아내와 딸을 불렀다. '내여집'에 있는 동안 재활용센터점 수리직으로 일하면서 700만원이나 모은 덕분이다.

전국에는 음식과 잠자리를 제공하는 150개 정도의 노숙자 쉼터가 있다. '내여집'이 이 중에서 눈에 띄는 이유는 노숙자를 마냥 쉬게만 하는 곳이 아니라는 점.이미 노숙자들 사이에서도 '내여집'에서 적응하려면 일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 소문 나 있을 정도다.

7~8명의 남성 노숙자들이 가전 제품 등을 수리해 주며 일하는 계양구 재활용센터는 매월 평균 600만원가량의 수익을 올리는데 800만원을 넘긴 달에는 성과급을 지급한다. 이를 밑천으로 2~3개월에 한 가정씩 독립한다.

여성들은 '내여람(내일을 여는 사람들)'이라는 유기농 식당에서 일한다. 가톨릭농민회에서 공급받는 유기농 야채로 만든 음식을 판매하는 전문점으로 여성 노숙자들이 설거지,청소 등을 도와주고 임금을 받는다.

'내여집'이 이런 사업으로 얻는 연간 수익은 7억원이다. 전체 예산인 19억원에서 40% 가까이를 자체 충당하는 셈이다. 임금은 적립해서 자립 생활이 가능할 때 되돌려 준다. 독립을 성취한 사람은 '내여집',대한주택공사의 지원으로 쪽방 원룸도 마련할 수 있다.

'내여집'에서 일하는 직원은 30명.노숙자를 돌보는 일 외에 독거 결식노인 70명에게 매일 도시락을 배달하고 60명의 새로운 노숙자들을 날마다 상담해야 한다. 재활용센터와 '내여람'을 관리하고 '푸드 뱅크'도 운영한다. 때문에 30명의 직원이 300명의 몫을 해 낸다는 평을 듣고 있다.

▶▶ 사업 아이디어 제출하고 평가받아

여성 노숙자 상담을 맡고 있는 김보라씨는 업무량 때문에 지난해 잠시 회사를 그만뒀다. 쉬는 날도 없이 매일 노숙자와 독거 노인들을 돕는다는 것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다시 돌아왔다. 급여가 2배가 넘는 일반 기업에도 취직했지만 3개월 만에 사표를 냈다.

김씨는 "내 존재의 가치를 확인할 수 있는 곳은 바로 여기"라고 했다. 노숙자들이 변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도 한몫을 했다는 성취감을 느끼는 것.다른 회사는 서비스를 위해 사람이 존재하지만 '내여집'만큼은 사람을 위한 서비스가 가능하다고도 믿는다.

'내여집'은 비영리 단체이지만 일반 기업 못지않게 체계적으로 움직인다는 장점도 있다. '내여집'에서는 모든 업무를 사업계획서로 만들어 제출해야 한다. 이렇게 나온 사업계획서는 가족상담소,재활용센터,노숙인 쉼터 등의 리더들이 모인 회의에서 평가받는다.

채택된 사업계획서는 매주 월요일마다 열리는 전 직원 회의에서 다시 검증받는다. 모두에게 발언 기회가 주어지며 지적받은 부분을 수정해 가며 진행시킨다.

아이디어가 뛰어나면 상을 준다. 지난해 '내여집'의 9주년 행사 사업계획서는 여성 노숙자와 가정폭력 피해자를 돌보는 가족상담소 팀이 1등을 차지했다. 해인교회의 건물을 이전한 것을 감안해 지역 주민들에게 홍보하는 자리를 마련해야 한다는 취지가 좋은 점수를 받았다. 가족상담소 팀은 상으로 2박3일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다.

▶▶ 철칙과 융통성의 공존

'내여집'은 술만큼은 철저하게 통제한다. 대부분 노숙자가 알코올 중독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술을 마신 노숙자에게는 찜질방이나 목욕탕에서 정신을 차리고 오라며 목욕비를 준다. 애써 술을 참고 있는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된다는 취지에서다. '내여집'에 입소한 노숙자가 가장 처음 받는 것도 알코올 치료와 정서순화 상담이다. 대신 다른 부분에서는 최대한 융통성을 발휘한다. 식단은 언제나 다수결로 정한다. 거리 생활을 하는 동안 항상 먹을 것이 부족했던 노숙자들을 배려한 것.'내여집'의 가훈도 '잘먹고 잘살자'다.

쉼터에 들어왔다고 해서 반드시 '내여집'이 운영하는 일터에서만 근무할 필요는 없다. 능력 있는 사람이라면 얼마든지 '1인 영업'으로 일할 수 있다. '내여집'에 들어오는 사람 중에는 전직 기술자들이 상당히 많다. 이들이 각자 인력 시장에 나가서 벌어오는 일당이 '내여집'에서 받는 것보다 많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내여집'에서 남성 노숙자들을 관리하고 있는 김철희 목사는 "이들을 돌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능력을 믿고 맡기는 것이 더 중요하다"며 "각자가 자립할 수 있는 능력을 되찾아가는 과정에서 자신에 대한 믿음도 강해진다"고 말했다.

글=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