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코피해ㆍ건설사 지원 등 긴급 처방
전문가들 "경기부양 적극 검토할때"

글로벌 금융위기가 실물경제로 전이될 가능성이 커지면서 대책 마련을 위한 정부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다. 미국 유럽연합(EU)을 비롯한 각국이 금융시장 안정화 대책을 내놓으면서 전 세계적인 금융위기는 일단 '숨고르기'에 들어간 형국이지만 실물위기는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정부는 금융위기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고 있는 중소기업과 건설사 지원 대책 마련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정부가 보고 있는 국내 실물경제의 위기 신호는 크게 세 가지다. △통화옵션 상품인 키코(KIKO)와 경기 침체에 따른 중소기업 자금난 심화 △건설사 자금사정 악화와 이에 따른 저축은행 부실 우려 △500조원이 넘는 가계 대출 부실화 가능성 등이 그것이다.

이와 관련,정부는 최근 키코 피해 기업에 대한 구제안을 내놨다. 중소기업을 네 등급으로 분류해 키코 손실 기업(A등급)에는 최대 20억원,키코 손실이 없는 기업(B등급)에는 최대 10억원을 지원하고 부실 징후가 있으나 회생 가능한 기업(C등급)은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에 들어가며 회생 불가능한 D등급은 지원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건설사에 대한 지원 방안도 곧 발표된다. 정부는 △연말까지 만기가 돌아오는 2조6393억원 규모의 자산담보부기업어음(ABCP) 상환을 연장해주고 △건설사가 분양받은 공공택지 계약 포기 시 되사주며 △대한주택보증이 2조원을 투입해 준공 전 미분양 아파트를 환매조건부로 매입하는 방안 등을 검토 중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미분양 아파트 매입 방안 등 세부적인 사안에 대한 이견이 있어 협의를 진행 중"이라며 "건설사의 자금난이 심각하다고 판단되는 만큼 최대한 빨리 대책을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가계대출과 관련해서는 대출 규모가 늘어나고 있지만 연체율이 높지 않아 우려할 수준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최근 변동금리형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상승하면서 서민들의 부담이 늘어나고,이로 인해 연체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해 금융감독원은 소득 하위 20% 계층 등 저소득층이 은행에서 빌린 주택담보대출의 거치 기간을 늘려주거나,만기를 연장해주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문제는 이 같은 대책과는 별개로 내년 이후 근본적인 경기 침체 우려가 좀처럼 가시지 않는 상황을 어떻게 타개할 것인가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내수 부진과 고용 불안 등을 해결하지 않고서는 장기 불황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하고,결국 재정정책을 통해 해결할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은다.

권순우 삼성경제연구소 거시경제실장은 "각국이 금융시장 불안 대책을 내놓으면서 우리가 받을 충격은 덜 하겠지만,우리 경제는 수년간 구조적으로 내수가 위축돼 왔다"며 "정부가 이미 내놓은 감세 정책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재정적자 확대를 감수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송준혁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금융위기가 글로벌 실물경제 위축으로 이어지는 내년에 우리 경제가 받을 타격은 더 클 것"이라며 "금리 인하는 환율을 자극할 수 있기 때문에 결국 재정 지출을 늘려 실물경제 위축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태명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