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 미황寺 성공비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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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끝마을 廢寺가 10년만에 年10만명 찾는 사찰로
'땅끝 마을 아름다운 절'로 불리는 전남 해남 미황사.서울에서 자동차로 여섯 시간이나 걸리는 먼 절이지만 해마다 이곳을 찾는 사람이 10만명을 넘는다. 연간 템플스테이 참가자만 4000여명.2000년 여름부터 방학 때 열고 있는 어린이 한문학당은 경쟁이 치열해 일찌감치 신청하지 않으면 낄 자리가 없을 정도다.
세상과 소통한 지 채 10년도 되지 않은 미황사가 산 중 사찰의 현대적 모델로 자리 잡은 까닭은 뭘까. 전.현직 주지가 힘을 합쳐 폐사지나 다름없던 절에 하나 둘 건물을 세우는 한편 지역 사회와 현대인들이 요구하는 산사의 역할을 스스로 찾아 나선 결과다.
20년간의 중창불사(重創佛事)를 끝내고 오는 18일 이를 기념하는 문화 축제 '미황사 괘불재 그리고 작은 음악회'를 여는 금강 스님이 이 절 주지를 맡은 것은 2001년.주지가 바뀌면 절의 주요 소임자와 사업도 바뀌고 전 주지는 다른 곳으로 떠나는 게 통례이지만 미황사는 달랐다. 1992년부터 주지를 맡아 중창불사를 이끌어 온 현공 스님(현재 미황사 회주)이 계속 사찰 건축을 맡고 금강 스님은 사찰 운영에만 전념하기로 한 것.
그 결과 미황사는 대웅보전과 명부전,삼성각 등 22채의 건물을 보수.복원.신축해 융성했던 옛 가람의 면모를 회복했다. 금강 스님은 그 사이 한문학당.템플 스테이.참선 프로그램.괘불재.음악회 등 다양한 '소프트웨어'를 개발.운영해 낯설었던 미황사를 친숙한 절로 바꿔 놓았다.
'한 건물부터 제대로 짓는다'는 신념으로 건물마다 최고의 자재를 쓰고 정성을 들인 점도 미황사의 성공 요인이다. 누각인 자하루의 1층 기둥 32개를 수입목 대신 국산 육송으로만 쓰기 위해 3년 동안 전국의 목재소를 수소문해 해결하기도 했다.
지역 주민을 사찰의 일원으로 끌어들이는 적극적인 친화 전략도 한몫 했다. 미황사 산사 음악회에선 사하촌 주민들로 이뤄진 주부 풍물패,어르신 소리꾼 등이 무대에 올라 '해남 들노래'와 남도 판소리 등 지역 문화를 선보인다. 또 매년 10월 열리는 괘불재에서도 지역 주민들이 햅쌀,콩,호박,깨,공예품,떡 등을 올리는 '만물 공양'이 하이라이트로 자리 잡았다.
경내지 정비 과정에서 나온 돌로 축대를 쌓아 주변 환경과 잘 어울리는 사찰로 만들고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 환영하는 것도 미황사의 장점이다. 방문객이 오면 기꺼이 안내해 주고 금강 스님은 누구든 차별 없이 자신의 방에서 차를 대접하며 이야기를 나눈다. 게다가 방문객이 원하면 형편껏 방을 내 준다. 그래서 이곳을 다녀간 사람들은 멀리서도 입소문을 내고 인터넷으로 퍼뜨리는 미황사의 지원 부대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
'땅끝 마을 아름다운 절'로 불리는 전남 해남 미황사.서울에서 자동차로 여섯 시간이나 걸리는 먼 절이지만 해마다 이곳을 찾는 사람이 10만명을 넘는다. 연간 템플스테이 참가자만 4000여명.2000년 여름부터 방학 때 열고 있는 어린이 한문학당은 경쟁이 치열해 일찌감치 신청하지 않으면 낄 자리가 없을 정도다.
세상과 소통한 지 채 10년도 되지 않은 미황사가 산 중 사찰의 현대적 모델로 자리 잡은 까닭은 뭘까. 전.현직 주지가 힘을 합쳐 폐사지나 다름없던 절에 하나 둘 건물을 세우는 한편 지역 사회와 현대인들이 요구하는 산사의 역할을 스스로 찾아 나선 결과다.
20년간의 중창불사(重創佛事)를 끝내고 오는 18일 이를 기념하는 문화 축제 '미황사 괘불재 그리고 작은 음악회'를 여는 금강 스님이 이 절 주지를 맡은 것은 2001년.주지가 바뀌면 절의 주요 소임자와 사업도 바뀌고 전 주지는 다른 곳으로 떠나는 게 통례이지만 미황사는 달랐다. 1992년부터 주지를 맡아 중창불사를 이끌어 온 현공 스님(현재 미황사 회주)이 계속 사찰 건축을 맡고 금강 스님은 사찰 운영에만 전념하기로 한 것.
그 결과 미황사는 대웅보전과 명부전,삼성각 등 22채의 건물을 보수.복원.신축해 융성했던 옛 가람의 면모를 회복했다. 금강 스님은 그 사이 한문학당.템플 스테이.참선 프로그램.괘불재.음악회 등 다양한 '소프트웨어'를 개발.운영해 낯설었던 미황사를 친숙한 절로 바꿔 놓았다.
'한 건물부터 제대로 짓는다'는 신념으로 건물마다 최고의 자재를 쓰고 정성을 들인 점도 미황사의 성공 요인이다. 누각인 자하루의 1층 기둥 32개를 수입목 대신 국산 육송으로만 쓰기 위해 3년 동안 전국의 목재소를 수소문해 해결하기도 했다.
지역 주민을 사찰의 일원으로 끌어들이는 적극적인 친화 전략도 한몫 했다. 미황사 산사 음악회에선 사하촌 주민들로 이뤄진 주부 풍물패,어르신 소리꾼 등이 무대에 올라 '해남 들노래'와 남도 판소리 등 지역 문화를 선보인다. 또 매년 10월 열리는 괘불재에서도 지역 주민들이 햅쌀,콩,호박,깨,공예품,떡 등을 올리는 '만물 공양'이 하이라이트로 자리 잡았다.
경내지 정비 과정에서 나온 돌로 축대를 쌓아 주변 환경과 잘 어울리는 사찰로 만들고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 환영하는 것도 미황사의 장점이다. 방문객이 오면 기꺼이 안내해 주고 금강 스님은 누구든 차별 없이 자신의 방에서 차를 대접하며 이야기를 나눈다. 게다가 방문객이 원하면 형편껏 방을 내 준다. 그래서 이곳을 다녀간 사람들은 멀리서도 입소문을 내고 인터넷으로 퍼뜨리는 미황사의 지원 부대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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