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사람들은 '죽고 싶다'는 소리를 입에 달고 산다. 아파 죽겠다,지겨워 죽겠다,힘들어 죽겠다,하기 싫어 죽겠다,아쉬워 죽겠다,보고 싶어 죽겠다,재미있어 죽겠다,좋아 죽겠다 등등.좋거나 싫거나 그 상황을 최대한 강조할 수 있는 말이 '죽을 만큼~'으로 표현되는 건 그 정도가 너무 커서 자기 감정으로 이기기 어려울 정도라는 뜻인데,요즘은 별로 심각하지 않을 때에도 '죽겠다'는 말을 숨쉬듯 쓰고 있다.

그런데 '말이 씨가 된다'는 말처럼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살을 밥 먹듯 한다. 어떻게든 살아 보려고 발버둥치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맥빠지는 일이나,지난주에도 스스로 생명 끈을 놓아 버린 우리 모두가 사랑했던 별 때문에 나라 전체가 슬펐다.

가까운 이웃을 잃은 것처럼 가슴이 뻥 뚫린 듯 스산한 바람이 아리게 훑고 지나갔다. 지난해 통계를 보면 43분마다 1명씩,하루 34명이 자살하고 자살 원인의 80%는 우울증이라는 것이다.

이 우울이 사람 잡는다. 우울증은 감기처럼 누구나 언제 어디서든 걸릴 수 있기 때문에 '마음의 감기'라고 부르는데,도파민과 세로토닌 같은 뇌 신경전달 물질에 이상이 생긴 뇌 질환이다. 그러나 남이 알까봐 정신과 치료를 꺼려해 그대로 방치하다가 자살로 이어질 수 있다.

여자가 남자보다 두 배가량 더 걸리지만 자살은 남자가 훨씬 더 많이 하는데,미국 존스홉킨스대는 우울증 환자의 자살 위험이 일반인보다 41배나 높다고 분석했다. 중년들은 갱년기 때문에 우울증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남성 갱년기는 예외 없이 피로를 느끼고 활력이 떨어지며 성욕과 발기력이 저하되면서 마음도 위축되고 소심해진다.

몸이 예전 같지 않은 걸 느끼며,젊었을 때의 원대한 꿈은 사라지고,지금까지 이루어 놓은 것이 별로 없다는 자신에 대한 실망감과 인생이 짧다는 것을 실감하면서 진정으로 대화할 사람이 없다며 외로움을 느낄 때 쉽게 우울증에 빠진다.

여성 갱년기는 에스트로겐 분비가 급격히 줄어들면서 '빨간 꽃'을 잃게 되는데,이때는 사소한 일에도 신경질적이고 감정 기복이 심하다. 이 외에도 여러 증상이 나타나지만 '그저 늙느라고 그러려니' 하고 참고 견딘다. 아내가 마법이 풀릴 때 외로워 죽겠다는 둥 아파 죽겠다는 둥 이야기를 하지만 남편들은 그냥 하는 꽃노래로 흘려 버리기 쉽다. 아내나 남편이나 관심이 고플 때 더 우울해질지도 모른다.

"요즘 생리가 있다 없다 해요. 폐경기라서 그런지 깜빡깜빡 잘 잊어버리고 '예민해져서 그런지 잠도 잘 안 오고' 누구랑 막 싸우고 싶어요. 난 이제 여자도 아닌 거 같아서 우울한데 남편은 신경질이 늘었다는 둥 건망증이 심해졌다는 둥 타박만 하는데,가끔 죽고 싶을 때가 있어요. "

"남편은 퇴근하고 집에 오면 만사가 귀찮은가 봐요. 말을 걸면 자기 좀 가만 내버려 두라고 괜히 짜증을 내요. 그 전에는 자상한 남편이었는데 요즘에는 잠자리도 뜸해지고…."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중년들이 맞는 가을이 외롭고 우울하더라도 자기를 죽이는 건 탈출구가 아니다. '오늘은 어제 죽은 사람이 그토록 바라던 내일이었다'라는 소포클레스의 말을 명심해야 한다. 자다가도 아내가 거실에서 혼자 훌쩍거리고 있는지,남편이 주방에서 술을 홀짝거리고 있는지 챙겨 봐야 한다.

누구나(?) 동화책에 나오는 왕자와 공주처럼 행복하게 오래 오래 살다가 해피엔딩으로 끝내고 싶을 것이다. 사람은 죽을 때 '좀 더 베풀 걸,참을 걸,행복할 걸' 하는 후회를 한다던데,어떻게 살면 그런 후회를 안 할까? 정답은 딱 하나. 남편이 하자고 할 때 냉큼 하고,사정하고 싶을 때 좀 더 참고,할 때마다 좀 더 재미있게 한다면 미련은 없을 것이다. 죽을 때 죽더라도 할 건 해야 한다. 땀나게 엎치락뒤치락하고 나면 더 살고 싶지 않을까?

/한국성교육연구소 www.sexeducatio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