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송 美프린스턴대 교수 "브레이크만 믿다 과속 사고내듯 리스크 관리 과신이 위기 키웠다"

전 세계로 독버섯처럼 번지고 있는 미국발 금융 위기는 어디서 비롯됐을까.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전문가들과 함께 미국 금융시스템의 안정성을 높이기 위한 방안을 찾고 있는 신 교수를 6일 프린스턴대 벤드하임 금융센터 연구실에서 만나 봤다.

―미 금융사의 최대 강점은 치밀한 리스크 관리였다. 어떻게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가 발생할 수 있었나.

"각 사별로 첨단 리스크관리 제도를 도입한 게 사실이다. 리스크 관리는 일종의 자동차 브레이크라고 볼 수 있다. 기술이 발달할수록 제동력이 향상돼 운전자는 속도를 더 낼 수 있다. 요즘 같은 위기는 모든 운전자가 성능 좋은 브레이크를 믿고 과속으로 달린 탓에 빚어진 것이다. 은행들은 돈을 벌면 대출을 확대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대출을 늘리기 위해 대출 기준을 낮춰 상환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에게도 돈을 빌려 줬다. 대출 자산은 적당히 포장해 유동화시켰다. 개별 금융사 입장에서는 당연한 선택을 한 것이다. 하지만 이번 금융 위기가 보여주듯,제도 전체의 안정성 측면에서는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역설적인 얘기이지만 이번 금융 위기는 개별사의 리스크 관리 제도를 과신한 데서 빚어졌다고 볼 수 있다. "

―신용평가회사나 감독기관에선 왜 위험을 미리 경고하지 않았나.


"상품 구조의 특성을 꼼꼼히 따져보지 않고 평가 시점 기준으로 모기지 증권에 좋은 신용등급을 준 신용평가사들의 잘못은 크다. 평가 수수료 수입이라는 유혹에 못 이겨 본연의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그런 유혹이 생길 수 있는 환경을 방치한 게 더 큰 잘못이다. 근본적인 잘못은 감독 시스템에 있었다. 서로 기능이 분산된 미 감독기관들은 금융사의 자산 건전성과 영업 행위에 대한 감독에 치중했을 뿐 금융시장 유동성 감독을 전혀 하지 못했다. 결국 신용 위기가 빚어진 것도 선제적으로 금융 안정성 감독을 하지 않은 탓이라고 볼 수 있다. "

―자산 건전성 외에 유동성까지 금융감독 범위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것인가.

"국제결제은행(BIS)의 자기자본비율이나 바젤Ⅱ는 철저히 자산의 건전성만을 따진다. 하지만 이번 신용 위기는 자산이 아니고 부채 쪽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다. 금융사들은 레버리지(차입)가 있기 때문에 100달러 손실을 입으면 1000달러어치 자산을 팔거나 대출을 줄여야 한다. 투자은행은 레버리지 비중이 30배에 달했다. 서브프라임 사태로 금융사들이 부채 쪽에서 문제가 생기자 투자자들은 위험을 축소할 목적으로 경쟁적으로 돈을 빼 갔다. 일단 뱅크론(대규모 예금인출 사태)이 발생하면 해당 금융사는 중앙 정부로부터 유동성을 공급받아도 생존하기 어렵게 된다. 최근 신용 위기가 최악의 국면을 맞는 것도 금융사 부채 측면에서의 위험성이 부각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

―기술적인 측면에서 감독 당국이 개별 금융회사에 대한 유동성 감독을 하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유동성 감독은 개별 금융사에 대한 것과 별도로 전체 시장의 유동성을 함께 봐 줘야 한다. 단기로 외화를 빌려서 장기로 대출했는지 따져 봐야 외환위기를 막을 수 있는 것 아닌가. 서브프라임과 함께 금융사 부실의 요인으로 꼽히는 구조화증권(SIV)은 장부 외 상품이어서 감독조차 받지 않았다. 총괄적인 감독이 중요하다. 필요 자기자본을 충족했느냐는 식의 경직된 감독 방식으로는 금융의 안정성을 확보할 수 없다. "

―전체 시장의 유동성을 종합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선 중앙은행이 감독 기능까지 가져야 한다는 얘긴데.

"통화 정책과 감독 기능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자산 건전성을 따지는 양적인 규제는 부외 상품처럼 이를 회피하는 수단을 만들게 마련이다. 질적인 금융 안정성을 위해선 적절한 시장 가격을 통해 유동성을 조정하는 역할을 중앙은행이 해 줘야 한다. 그런 점에서 2002년과 2003년 앨런 그린스펀 전 FRB 의장이 금리를 너무 낮게 가져간 것은 잘못된 조치였다. "

―그동안 거시경제 학자들이 금융 안정에 대한 연구를 소홀히 했다는 지적도 있다.

"최근 20년간 뉴케인시언 거시경제 학자들이 경제학의 흐름을 주도하면서 소비자 물가에 집착한 경향이 있었다. 금융 지식에 대한 연구가 태부족했다. 미국 대학에서 화폐금융론 강의가 거의 없어진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거시 경제는 물가에 치중했고,금융은 비즈니스 스쿨에서 어떻게 돈을 벌 것인지만을 가르쳤다. 그 결과 중앙은행은 인플레이션만 관리하도록 제도를 개편했다. 영국이 그렇고,한국도 영국 모델을 도입했다. 거시경제 학자들이 금융 안정에 대해 너무 단순하게 생각한 측면이 있다. 신용 위기를 제대로 지적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학자들도 많이 반성해야 한다. "

뉴욕=이익원 특파원 iklee@hankyung.com

[ 신현송 美프린스턴대 교수 약력 ]

△1959년생 △1982년 옥스퍼드대학 졸업 △1988년 옥스퍼드대 박사학위(화폐금융) △1990년 옥스퍼드대 교수 △2000년 런던정경대(LSE) 교수 △2006년 프린스턴대 교수(경제학) △주요 저서;글로벌 게임(2003),유동성 리스크와 전염(2006),레버리지 손실(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