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로 일본이 개방 충격파 더 컸다"
고려대 일본연구센터서 한일 전문가 좌담


일본 대중문화개방 10주년을 기념하는 좌담이 7일 고려대 일본연구센터에서 마련됐다.

지난 10년간 한일 문화교류의 맥을 짚고, 향후 양국 관계의 발전 방안을 모색하는 자리였다.

한국과 일본이 느끼는 문화개방의 체감온도는 달랐지만 양국에 미친 영향은 매우 컸다는 점에 참가자들은 공감했다.

김영덕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 연구위원이 사회를 맡았고, 오구라 기조 일본 교토대 교수와 채지영 한국문화관광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이 좌담에 참여했다.

이날 좌담은 8일 열리는 '신 한일관계 파트너십 공동선언' 10주년 기념 심포지엄에 앞서 오프닝 행사 격으로 마련됐다.

--개방을 한 지 10년이 지났는데. 문화개방의 여파가 예상과는 다르게 전개된 것 같다.

▲(채지영) 당초 개방에 대한 한국 내 논조는 우려의 시각이 컸다.

문화강국 일본과의 경쟁을 통해 한국 문화산업이 받을 타격에 대한 염려가 높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이 같은 우려가 말 그대로 기우에 불과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오구라 기조) 보통 일본인들은 어떤 특정한 나라(한국)의 문화를 그간 받아들이고 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개방을 한다는 소리를 들으면서 '한국은 왜?'라는 이유를 비로소 생각하게 됐다.

--대중문화개방이 양국 산업이나 문화에 미친 영향은.
▲(채지영) 당초 일본이 한국문화에 대해 가졌던 생각은 우리가 인도네시아나 수단에 가졌던 것과 같다.

일본은 당시 한국문화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대중문화 개방정책이 추진되면서 한국문화가 (체계적으로) 유입될 수 있는 물꼬를 텄다.

즉, 한류가 일본으로 흘러갔을 때 거부감없이 이 물결을 일본인들이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것이다.

심리적 불편함을 겪지 않고 한국문화에 대한 소비가 가능해지면서 '겨울연가'가 크게 성공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반면 한국은 오래전부터 일본문화에 친숙했다.

그래서 개방에 따른 충격파가 한국 내에서는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

▲(오구라 기조) 일본 내에서 '문화'라는 말과 한국 내의 '문화'라는 말은 차이가 있다.

김대중 대통령의 일본 문화개방 결정은 용단이었다.

일본 '저질문화'에 대한 반대 여론이 비등한 상황 속에서 이뤄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은 이를 다르게 생각한다.

일본의 보통사람들은 정치가 문화에 관여하는 나라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하고 있다.

이 때문에 보통 일본 사람들은 대중문화 개방을 높이 평가하지 않았다.

따라서 대중문화 개방정책으로 인해 한류 붐이 조성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한류의 영향으로 일본 내에서 한국에 대한 친근감이 커졌지만 한국에서는 일본에 대한 친근감이 자라지 않은 것 같다.

▲(채지영) 한국은 일본문화를 음성적으로 계속 수입해 왔다.

나도 어렸을 때 애니메이션 '밀림의 왕자 레오'를 보면서 자랐다.

그래서 일본에 대해 급격한 이미지 변화는 오지 않았다.

반면 일본은 한국 문화를 처음 대면하면서 그것이 새로운 관심 대상으로 떠올랐고, 그에 따라 많은 영향을 받았다.

▲(오구라 기조) 일본 사람들이 받아들인 한류를 한 마디로 표현하면 '충격'이라는 말이다.

전혀 몰랐던 존재가 갑자기 아주 '멋있게' 등장한 것이다.

일본 사회는 그런 충격을 느낀 것이 역사상 세 번 정도 있었다.

처음에는 고대 국가를 건설할 때, 두 번째는 도요토미 히데요시 시절 한국의 주자학을 수용할 때, 그라고 마지막이 1990년대 중반부터 현재까지다.

한류라는 건 그런 움직임 속에 있다.

한류는 일본 사람이 가진 한국에 대한 거리감을 완전히 없애는 충격적인 문화적 현상이었다.

--그처럼 한류가 충격으로 다가온 이유는.
▲(오구라 기조) 일본사람들은 경제위기를 경험하기 직전인 1990년대 중반까지 국가의 안전, 권력 등에 대해 잊고 살았다.

보통 국가에 사는 사람이라면 항상 생각하고 있는 그런 이슈에 대해 잊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대포동 미사일이 일본 본토를 위협하고, 이웃나라 한국과 중국이 급성장하는 반면 일본은 '잃어버린 10년' 신세로 전락하면서 '주체성'이라는 걸 처음으로 생각하게 됐다.

그런 상황에서 일본은 한국의 '주체성'을 새롭게 바라보게 된 것이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일본 언론에서는 '한국을 배우자'라는 말이 유행했다.

'한국의 경제위기 극복에 대한 노하우를 배우자', '한국 정치가의 리더십을 배우자' 등이 회자됐다.

일본 사람들이 주체성과 정체성을 찾고 있을 때, 한국이라는 모범이 바로 옆에 있었던 것이다.

그게 한류의 토대가 되었다.

한류란 작품의 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한국 남자들에 대한 매력이다.

키무라 타쿠야는 탈근대를 상징하지만 한국의 남자들은 근대적인 멋이 있다.

--향후 10년 후 한일 관계는 어떤 모습일까.

▲(채지영) 일본의 대중문화 개방이 한국 산업에 미친 영향은 엄청나다.

통계상 그 영향력은 별로 없는 것 같지만 실제 산업 구조 변화에 미친 영향은 컸다.

일단 한국은 일본의 선진 마케팅 기술을 도입했다.

하나의 드라마를 통해 사진집, 여행상품, 캐릭터 상품 등을 곁들이는 이른바 '원 소스 멀티 유즈'법을 배우게 됐다.

향후 한류가 성공을 거두려면 지금의 성공에 도취 돼서는 곤란하다.

또 저작권도 일본 수준으로 가야 한다.

통계에 안 잡혀서 그렇지 한국인들이 불법다운로드로 본 일본 영화, 애니메이션은 엄청날 것이다.

▲(오구라 기조) '겨울연가'에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대사는 "만약에 길을 잃었다면 북극성을 보세요"라는 대사다.

북극성만 그 자리에 있고, 나머지 별들은 그것을 중심으로 움직인다는 뜻이 내포돼 있다.

여기서 북극성은 주체를 상징한다.

일본에는 그런 것이 없었기에 '겨울연가'의 이 대사는 사람들을 매료시켰다.

좀 다른 얘기지만 고이즈미가 인기를 끈 이유는 일본의 주체성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사실 한류는 양면성이 있다.

한국의 주체성에 대해 호감을 느낀 사람은 한류로 흐른다.

반면 한류 속에 내포된 내셔널리즘을 싫어하는 이들은 혐한류로 향한다.

그러나 양자의 공통점은 한국을 배워야 한다는 점이다.

한국이 '영토문제'에 집착한다면 일본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본 젊은 층은 한류가 통용되기 전 영토문제에 대해 무관심했다.

한국의 30-50대의 장점은 전근대, 근대, 탈근대를 모두 경험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일본 남자들과는 비교된다.

일본의 30대는 전근대는 고사하고 근대도 제대로 모른다.

그래서 작품에 힘이 없다.

전근대적, 근대적 세계관을 어떤 식으로든 재활용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buff27@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