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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파원칼럼] 그리스펀을 위한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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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무 바쁩니다. 유감스럽습니다(Overcommitted,regrets)." 며칠 전 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으로부터 짤막한 이메일 답장을 받았다. 오죽했겠는가. 최악의 금융위기 난국에 낯선 외국 기자가 꼬치꼬치 인터뷰를 하자고 들이댔으니 편치 않았을 것이다. 요즈음 그는 두툼한 뿔테 안경 너머로 무슨 상념에 빠져 있을까.

    그린스펀은 미국 금융위기가 깊어지자 "100년에 한 번 일어날 만한 사건"이라고 일갈했다. 산전수전 다 겪은 노회한 미국의 전 '경제대통령'에게도 충격파가 컸을 것이다.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 때 FRB 의장으로 처음 임명된 후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을 거쳐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인 2006년 FRB 의장직을 은퇴할 때까지 무려 18년 6개월 동안 수 차례의 월가 위기를 지켜보고 처방했던 그다.

    취임 두 달 만인 1987년 10월17일 다우지수는 23% 폭락하면서 '블랙 먼데이(검은 월요일)'로 그를 환영(?)했다. 그의 체면은 말이 아니었다. 하지만 거품을 타고 주가가 꼭대기까지 달아올랐던 1996년에 그의 대응은 달랐다.

    그린스펀은 "비이성적 과열(irrational exuberance)"이라는 두 마디의 멘트로 시장과 투자자들의 과도한 탐욕에 주의를 환기시켰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1997년 10월27일 다우지수는 7.2% 고꾸라졌다.

    시장은 망가졌으나 그의 체면은 살아났다. 이후 '그린스펀의 입'은 미국뿐 아니라 글로벌 금융시장이 주시하는 바로미터가 돼 버렸다.

    그리고 11년이 경과한 2008년.그린스펀 신화에 금이 가는 소리가 들린다.

    FRB 의장으로 재직할 당시 저금리 정책을 통해 시중에 돈을 너무 많이 푼 탓에 주택시장에 거품이 끼었고,이는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와 미 금융위기를 불렀다는 책임론이 불거졌다. 그린스펀 원죄론엔 노벨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미 컬럼비아대 경제학 교수가 앞장을 섰다.

    자칫 금융위기의 씨앗을 뿌린 주범으로 전락할 처지인 그린스펀으로선 할 말이 많을 게다. "1세기에 한 번 발생할 사건"이라고 책임론을 희석시켰으나 속으로는 '저금리 덕에 경기 호황을 즐긴 당신들,시장의 거품과 탐욕에 조기 경보를 발령한 적 있는가'라며 강변할 법도 하다. 그에게 굳이 무리한 레버리지(자금 차입)를 통해 고위험-고수익 돈놀이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르던 미 투자은행들의 잠재적 재앙은 왜 지적하지 않고 지나쳤는지 묻고 싶진 않다.

    2007년 발간돼 세계적 베스트셀러에 오른 그린스펀의 회고록('격동의 시대,신세계로의 모험'ㆍThe Age of Turbulence-Adventures in a New World)을 다시 펼쳐봤다. 그는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총칼보다 강하다. 수많은 안팎의 위기 속에서 복원력을 발휘했다. 그 복원력에 무한한 신뢰를 보낸다"고 방점을 찍었다.

    여기에 '다만 금융자본주의에서 탐욕이라는 이름의 전차는 수시로 레테의 강(망각의 강)을 건넌다'고 일찌감치 안전장치를 걸어두지 않은 것이 그의 실수라면 실수다.

    워싱턴=김홍열 특파원 come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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