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최근 무공해 석탄에너지,해양 바이오연료,그린카,LED조명 등 22개 분야를 신성장동력으로 확정했다. 신성장동력기획단장을 맡아 지난 6개월간 360여명의 산ㆍ학ㆍ연 전문가들과 5∼10년 뒤 한국을 먹여살릴 신성장동력 발굴 작업을 총지휘한 서남표 KAIST 총장(72).그는 이명박 대통령이 참석한 지난 22일 '신성장동력 발표회'에서 과감한 규제 완화를 통해 신성장동력 분야에 대한 기업의 투자를 이끌어 내야 한다고 건의했다.

서남표 총장은 28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과거 값싼 제품을 만들어 팔던 한국이 지금은 고부가가치 제품을 수출하고 있지만 이것도 곧 한계에 봉착할 것"이라며 "연구개발에 과감히 투자해 미래 신성장동력에 필요한 핵심기술을 확보하는 데 정부 기업 대학이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 경제의 성장 잠재력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많습니다. 기업들도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는 데 고심하고 있는데요.

"경제 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위해선 지금 하고 있는 것을 더 잘하는 게 우선입니다. 반도체는 D램 값이 싸지면서 어려운 것 같고… 그나마 조선과 자동차는 상황이 괜찮은 편이죠.문제는 미래입니다. 세계 경제가 침체로 이어진다는 전망이 많아 앞날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니까요. 한국의 대기업은 그런대로 잘 하고 있다고 봅니다만 중소기업이 문제입니다.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중소기업을 얼마나 많이 육성할 수 있느냐가 신성장동력 확보에도 중요하니까요. "

-중소기업 육성과 일자리 창출은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내느냐가 관건인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는 돈 있는 사람이 투자를 안 하는 것 같습니다. '500억원을 가진 사람이 투자해서 중소기업을 만들면 골치만 아프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돈 있는 사람이 새로 기업을 만들어 고용을 창출하면 '특혜'라는 말을 들을 정도까지 지원해줘야 합니다. 일자리는 대기업도 만들어야 하지만 결국엔 중소기업에서 많이 나와야 됩니다. 과거 한국에서 벤처 바람이 불었을 때 실패한 사람이 많았다고 해요. 하지만 새로 시작할 수 있는 비즈니스는 여전히 많습니다. 위축돼 있는 벤처정신이 살아나야 합니다. "

-이번에 나온 22개 신성장동력은 관련 기술개발에서 한국이 다소 뒤처져 있어 그 격차를 줄이는 게 시급하다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봐도 새로운 기술이 나왔을 때 일자리가 가장 많이 늘어났습니다. 1930년대 미국에 자동차 회사가 생겼을 때 너도나도 회사명 뒤에 'motors'라고 붙였잖아요. 뷰익도 당시엔 욕조를 만드는 회사였거든요. 새로운 산업,기술이 수많은 회사를 만들어내고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결국엔 거대한 3개 자동차 회사로 뿌리를 내린 것이죠.지금은 BT(바이오기술) 분야가 딱 그런 상황이에요. 보스턴에만 500여개에 달하는 관련 기업들이 저마다 질병과 관계되는 단백질을 찾아 사업화하는 데 골몰하고 있죠.이명박 정부도 연구개발에 투자해 중소기업을 키워내는 데 힘을 쏟아야 합니다. 작은 회사들이 많이 생겨나 일자리를 창출하도록 말이죠.다소 늦었더라도 배우면서 독창적으로 하면 승산이 있습니다. 다만 너무 배우면 뒤만 따라가게 되니까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많이 나올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

-신성장동력 중에서 에너지 환경 관련 분야가 특히 눈길을 끕니다.

"무공해 석탄에너지는 저급 석탄을 원료로 해서 합성석유,화학제품,전기 등을 생산하는 것인데요. 세계적으로 저급 석탄 매장량이 4700억t이나 된다고 합니다. 가격은 물론 고급탄의 10분의 1밖에 안되고요. 값이 싼 이유는 저급탄을 활용해 앞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에요. 이번에 정부에도 제안을 했습니다. 조용하게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저급 석탄 광산을 최대한 확보해 두자고 말이죠."

-해양 바이오연료도 우리가 상당한 기술력을 갖고 있는 분야로 알려져 있는데요.

"우뭇가사리에서 바이오연료를 생산하는 것인데,얼마나 생산성을 확보할 기술을 개발하느냐가 관건입니다. 기술개발이 이뤄져 서울시 면적 3배 정도의 해양 양식장을 이용하면 국내 휘발유의 20%를 대체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인도네시아 양식 가능 면적의 9분의 2 정도면 전 세계 휘발유 사용량의 2%를 공급할 수 있고요. 지금부터 인도네시아 같은 국가와 해양 바이오연료 분야에서 협력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 가야 합니다. 정부가 할 일은 그런 것입니다."

-녹색성장이 화두가 되면서 너도나도 사업에 뛰어들고 있습니다. 특히 태양광 같은 분야에서는 과열 양상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고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너도나도 해야 한다고 봐요. 태양광으로 큰돈을 벌어 보겠다는 기업이 수십개는 돼야 합니다. 크게 성공하려면 수많은 기업이 치열하게 경쟁해야 합니다. 그래야 더 많은 아이디어가 나오고 투자도 활발히 이뤄지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그러다 보면 망하기도 하고 기업들끼리 합치기도 하겠지만 그런 과정을 겪게 되면 해당 분야의 경쟁력이 더욱 커지게 되는 법입니다."

-기획단은 신성장동력 확보를 위해 수도권 규제와 금산분리 완화 등이 필요하다고 건의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신성장동력에 5년간 99조4000억원의 투자가 필요할 것으로 추산했어요. 이 가운데 정부 예산은 10분의 1도 안됩니다. 결국 성과를 내려면 민간의 투자를 이끌어 내야 합니다. 규제 완화도 결국 민간이 투자할 수 있는 길을 막아서는 안 된다는 취지에서 건의한 것입니다. 면허 하나 받으려면 몇 달씩 걸리는데 어떻게 투자가 이뤄지겠어요. 돈 벌 수 있는 길이 보이면 기업들은 하지 말라고 해도 투자를 할 것입니다. "

-5∼10년 뒤 먹거리 산업에 대한 밑그림은 일단 그려진 셈인데,실천이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계획도 중요하지만 정말 실천이 중요합니다. 걱정되는 것은 정부 내에서 (신성장동력 분야에) 미친 사람이 있어서 끊임없이 밀어줘야 되는데,한국에서는 해당 분야의 국장도 1년이면 바뀌고 과장도 자주 바뀌고 하더군요. 장관도 길어야 1~2년 아닙니까. 누군가 확 틀어쥐고 일할 수 있어야 되는데 5년간 강력하게 추진해 나갈 수 있는 사람은 결국엔 대통령밖에 없습니다. "

-신성장동력에 필요한 기술개발을 위해서는 연구개발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하느냐도 중요한 것 같습니다.

"한국의 R&D 예산이 10조원 정도 되지 않습니까. 연구개발 예산을 쓸 때 하나에 하나를 더하면 (그 성과는) 둘이 나오면 안 됩니다. 셋이 나오고 넷이 나오게 해야 하는데 지금은 둘이 나올까 말까하는 수준입니다. 정부 출연 연구원들 간에 벽도 높게 존재하고 있고,또 독불장군이 너무 많아서 그렇죠.한국 대학의 연구개발 예산을 늘리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집중적으로 지원할 곳에 지원하는 일도 필요합니다."

글=류시훈/사진=강은구 기자 bad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