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널드 레이건 시대가 공식적으로 막을 내렸다. "(파이낸셜타임스),"미 자본주의는 미지의 세계를 가기 시작했다. "(월스트리트저널),"미국의 금융시스템은 실패했다.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

금융위기를 계기로 '미·영식 금융자본주의'가 흔들리고 있다. 금융자본주의는 1980년 이후 세계 경제를 지배해온 자본주의 전형으로 각광받았다. 그러나 순식간에 상황은 변했다. 방종에 가까운 자유를 누렸던 금융자본은 '큰 정부'와 '강(强)규제'를 불러들이고 있다. 아직 위기가 진정된 것이 아닌 점을 감안하면 금융자본주의가 종언을 고할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미국식 금융자본주의는 80년대 초 시작된 '레이거노믹스'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속 인플레이션)에 시달리던 시기에 집권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대공황 이후 50여년간 미국 경제의 근간이었던 '케인스주의'를 폐기했다. 대신 신자유주의를 채택했다. 모토는 '작은 정부,큰 시장'과 '탈(脫)규제,무(無)국경'이었다.

레이거노믹스는 금융업이 세계 경제를 지배하는 금융자본주의의 꽃을 피우는 계기가 됐다. 1949년 처음 선보인 헤지펀드는 운용규모가 1조5000억달러에 달할 정도로 성장했다. 1990년대 들어선 사모펀드까지 가세했다. 정부의 어떤 감독도 받지 않는 헤지펀드와 사모펀드는 돈이 되는 곳이라면 어디든 침투했다. 아시아 금융위기의 배후로 지목될 정도였다.

뿐만 아니다. 대공황 이전까지 세계경제를 주물렀던 투자은행(IB)들은 다시 금융자본주의의 주인공으로 부상했다. 컴퓨터와 수학 및 공학의 발달까지 이뤄지면서 이들은 파생금융상품을 만들어 50조달러로 키웠다. 스스로는 첨단 금융기법을 개발했다며 '리스크 제로(위험성 없음)'란 환상에 취했다. 자기자본의 100배에 달하는 돈을 빌려 이리저리 투자하는 위험천만한 짓도 꺼리지 않았다.

미 정부도 거들었다. 대공황의 반사작용으로 1933년 만들어졌던 '글래스-스티걸법'을 1999년 폐지했다. 금융업종 간 칸막이가 없어지면서 금융자본은 날개를 달았다. 블랙먼데이(1987년)를 비롯 저축대부조합(S&L) 연쇄 파산(1989년),닷컴 버블붕괴(2000년) 등 금융자본주의의 폐해가 나타날 때마다 금리를 내리고 돈을 풀어 위기를 넘겼다.

외환위기를 맞은 아시아 국가와 남미국가 등에는 '금융개방'이라는 해법을 강요했다. 미국의 금융자본은 아무런 규제 없이 국경을 넘나들었다. 이들이 벌어들이는 돈은 제조업이 거덜난 미국을 세계 최강국으로 지탱시키는 힘이 됐다. '앵글로 색슨 자본주의'나 '카지노 자본주의'라는 비아냥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러나 방종과 거품의 대가는 컸다. 장사가 잘될 때 정부의 간섭을 거부하던 금융자본은 위기가 닥치자 정부의 개입을 요구했다. 스티글리츠 교수의 말대로 "금융업은 위선에 빠졌고 그 결과가 이번 금융위기"였다. 미국 정부도 급기야 7000억달러라는 사상 최대의 공적자금을 투입키로 결정함으로써 금융자본주의의 한계를 인정하고 나섰다.

관심은 위기 이후다. 과연 금융자본주의를 대체할 새로운 유형의 자본주의가 나타나느냐가 초점이다. 비록 미국식 금융자본주의의 폐해가 드러났지만 제조업이 거덜난 미국이 금융자본의 마력을 쉽게 포기할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그러다보니 "미국 중심의 금융자본주의는 당분간 유지될 것(함준호 연세대 교수)"이라는 견해가 우세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금융위기는 미국식 금융자본주의의 '결정적인 전환점(decisive turn)'을 만든 것(월스트리트저널)"만은 분명하다.

하영춘 기자 ha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