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지영의 와인있는 식탁] 왕새우가 돌아왔다, 와인 꽃향기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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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추석 연휴도 지나고 나니,어느새 가을의 문턱이다. 곡식이 익고 먹거리가 풍요로운 가을에는 유난히도 식탐이 높아진다. 가끔씩 청명한 가을 하늘을 올려다 보며 내 식탐과 어느 쪽이 더 높을까 의구심을 가질 정도이니 말이다.
추석 내내 식탁에 오른 맛난 음식에도 만족감을 다 채우지 못했는지,연휴가 끝나기 무섭게 추석 방학 중인 딸과 함께 서해안으로 달려 갔다. 이유는 대하라는 녀석 때문이다. 9~10월의 별미라는 왕새우(대하)는 보통 비싼 가격으로 인해 쉽게 탐하기 힘들다. 요즘은 양식업이 발달해 그나마 구경하기 쉬워지긴 했지만 고소하고 보드라운 자연산 대하를 느껴 보려면 아무래도 산지를 찾는 것이 제일이다. 사실 크기도 더 커지고 가격도 조금 저렴해지면서 대하 수확량이 많은 10월이 제철이라 하지만 9월에 막 들어 온 싱싱하고 조금은 작지만 더욱 달근한 맛을 간직하고 있다.
국내에서 대하가 가장 많이 잡히는 산지는 두 군데이다. 모두 충청남도에 있고 차로는 30분가량 떨어져 있다. 먼저 홍성군 서부면에 자리 잡은 남당항.건너에 안면도가 보이고 배로 10분 정도 들어가면 울창한 대나무로 유명한 죽도가 있는데,10년 넘게 매년 9월 초 대하축제를 여는 곳이다. 바닷가를 따라 늘어서 있는 식당수만큼 호객 행위를 하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축제가 막 끝난 때라 소란스럽고 산만하지만 가을 풍어의 분위기는 만끽할 수 있다. 조용하게 대하를 즐기기 위해 차로 5분쯤 달려 천수만 옆 어사리로 갔다. 남당리에 비해 식당의 수나 인적이 훨씬 적은 조용한 곳으로,바다 위에 지워 놓은 식당들 중 한 곳을 골라 들어갔다. '부시맨 회 하우스'(041―643-3689)라는 생뚱맞은 상호이지만 아주머니 인심이 묻어나며 식탁 바로 옆이 바다라 창문을 열어 놓고 식사하면 마치 배 위에 앉아 있는 것 같다.
또 다른 대하 산지는 태안군 안면도 백사장항으로 남당항에 비해 조금 더 깔끔한 편이다. 건너편에 보이는 드르니항에서 다리로 연결돼 있고 한국에서 여섯 번째로 커,섬인지 육지인지 구분이 안 간다. 하지만 바닷가를 향해 같은 규모로 줄지어 있는 대하를 파는 가게들만 봐도 대하 산지임을 알 수 있다.
사실 어느 식당을 가나 대하를 먹기에 별 차이가 없어 전망이 좋거나 발길 닿는 곳으로 들어가면 된다. 백사장항에서 제일 서비스가 좋은 '온누리 회 타운'(041―673-8966)을 찾았다. 대하구이,조개구이,생선회와 매운탕까지 함께 나오는 세트메뉴는 소(小)가 10만원인데 어른 4~5명이 즐길 만하다. 하지만 대하는 양식이라 조개구이와 생선회가 있는 세트 메뉴 소를 6만원에 주문하고 식당 밖 가게에서 자연산 대하를 사다 구워 먹어도 된다. 지역마다 시기마다 가격은 조금씩 차이가 나는데 보통 1㎏에 3만원 선이다. 어느 식당을 가더라도 시장에서 사간 대하나 생선은 1만원을 더 추가해 내면 된다.
양식 대하에 비해 자연산 대하는 색이 더 흐리고 붉은 기가 돌며 가격은 두 배 차이가 난다. 살이 탱탱하면서도 부드럽고 훨씬 고소한 단맛을 내며,바로 배로 들어온 것이어선지 싱싱하면서도 비린내가 없다. 자연산 대하를 즐기는 가장 좋은 방법은 먼저 오도리이다. 즉,머리를 따고 껍질을 벗겨 생으로 먹는 맛이야말로 진정한 바다 음식을 몸으로 체험하는 순간이 된다. 어느 정도 오도리를 즐기고 나면 소금구이가 좋다. 살짝 간이 밴 대하를 진하고 고소한 맛의 머리부터 탱글하고 감칠맛 나는 살까지 가장 간단하면서 싱싱함을 통째로 느낄 수 있는 조리법이다.
이때 빼놓을 수 없는 와인이 독일 모젤 지방의 '베른카스텔러 리슬링 카비넷(Bernkasteler Riesling Kabinett)'이다. 알코올 도수가 8.5도밖에 되지 않는 화이트 와인으로 꽃 향기와 함께 뒤에 느껴지는 산도,그리고 살짝 감쳐지는 단맛이 자연산 대하와 절묘하게 어울린다. 게다가 가격(1만5000원 선) 또한 높지 않아 한두 병쯤 부담없이 즐길 만한 와인이다. 오도리나 소금구이 외에 대하 튀김과도 잘 어울린다.
부른 배를 쓰다듬으며 아직도 바닷물이 미지근해 발을 담글 만한 근처 해수욕장을 거닐거나,노랗게 익어 가는 논 밭을 끼고 드라이브를 하면 가을의 운치가 온몸에 느껴진다.
/음식문화 컨설턴트 totable22@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