産銀의 인수불가 결정에 역할..뒤늦은 안도

산업은행이 국제금융시장에 큰 충격파를 던지고 있는 리먼브러더스 인수를 한때 강력 추진했으나 청와대의 반대로 최종 단계에서 포기했던 것으로 16일 알려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날 "산은의 리먼브러더스 인수에 여러가지 문제점이 있는 것으로 파악, 수석회의 등 내부 논의를 거쳐 부정적 입장을 최종 정리했다"면서 "만약 리먼을 인수했더라면 막대한 부실을 떠안을 가능성이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앞서 리먼은 지난 14일(현지시각) 미국 정부가 민간업체 회생을 위해 더 이상 공적 자금을 투입할 수 없다는 입장을 정함에 따라 연방파산법원에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월가에서는 리먼의 잠재 부실규모는 300억 달러 정도에 달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앞서 산업은행은 리먼이 지난 7월 산은측에 지분 51%의 인수를 제시하자 글로벌 은행으로의 입지 구축과 국내 금융의 선진화 등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이를 적극 추진했다.

산은은 7월말 1주일간의 실사를 거쳐 산은과 국내은행을 중심으로 컨소시엄을 구성, 공개 매수를 통해 인수한다는 방침을 정했다.

당시 인수 자금으로 2조원을 산은이 출자하는 등 총 7조-8조원을 조성키로 했으나 뒤에 리먼의 부실자산 평가 문제가 제기됨에 따라 공개매수 계획을 철회하는 대신 리먼을 분사시킨 뒤 부실이 적은 클린(Clean) 회사를 중심으로 신주를 인수하는 내용의 재협상을 추진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한 것으로 알려졌다.

클린 회사 인수 비용으로는 50억-60억 달러 가량이 들 것으로 추정됐다.

청와대는 이 같은 움직임에 대해 정밀 검증 및 내부 논의 결과 자칫 잘못될 경우 금융 위기론 점증과 함께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 전반에 대한 신뢰성 상실을 초래하는 악재가 될 것으로 판단, 강력하게 제동을 건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달 25일 수석회의 등을 거쳐 산은의 리먼 인수가 부적절하다는 데 최종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리먼을 인수하더라도 주가의 추가하락 가능성이 있는 데다, 리먼의 도산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것으로 봤다"면서 "국부 8조원 가운데 2조4천억원의 손실이 있을 것으로 추산되는 등 정치.경제적 리스크가 너무 컸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리먼 인수로 부실을 떠안을 경우 금융 정책이 실패한 것으로 공격받을 소지가 있고 내년 지자체 선거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라며 "산은의 자금 여력, 리먼 인수시 전문인력 이탈에 따른 회사 가치 하락, 외환 유동성 경색 등의 가능성도 고려했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산업은행 민유성 행장은 "리먼과의 협상에서 인수 선언은 9월에 하되 실제 인수는 리먼의 구조조정이 제대로 됐는지 확인한 뒤인 내년 2월에 이뤄지도록 했다"면서 "또 리먼을 굿(good) 회사와 배드(bad) 회사로 나눠 부실채권은 배드 회사로 완전히 모는 등 회사를 완전분리한 뒤 굿 회사에 투자하는 것이었으며, 그 인수 가격도 리먼 제시가격의 3분의 1에 불과했다"고 협상 내용을 설명했다.

민 행장은 또 "내년 2월까지 6개월간 협상 조건에 중대한 변화가 발생할 경우 협상을 무효화하는 쪽으로 협상했는데, 리먼이 우리 쪽 요구를 거부해 추가 협상을 하려는 차에 청와대의 결정이 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민 행장은 "협상 과정에서 최종 결정은 정부가 갖고 있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면서 "리먼이 너무 욕심을 부리지 않았더라면 이런 상황까지 가지 않았을 것"이라고 부연했다.

(서울연합뉴스) 황정욱 기자 hjw@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