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10억달러 규모의 외국환평형기금채권(외평채) 발행을 연기했다고 12일 공식 발표했다. 국제 금융시장의 신용경색이 당초 예상보다 심각해지면서 가산금리가 높아지자 '굳이 무리할 필요 없다'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이날 외환시장에선 '이미 어느 정도 예상됐던 일'이라며 무덤덤하게 반응했다. 원.달러 환율은 개장초 오히려 하락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문제는 가산금리

이날 미국 뉴욕에서 외국 투자자들과 발행금리를 최종 결정(프라이싱)할 예정이던 재정부는 "외평채 가산금리가 큰 폭으로 상승하는 등 발행조건이 당초 예상보다 악화됐기 때문"이라고 발행 연기 배경을 설명했다. 실제로 월가 주요 투자자들이 주택시장 침체에 따른 신용경색 여파로 안전 자산 위주로 투자에 나서면서 개발도상국은 물론 해당 금융사들의 차입이 사실상 막힌 상황이다. 시장 흐름만 보면 투자자들 입장에서는 더 많은 가산 금리를 요구하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도 재정부는 이달 초 '9월 위기설'이 불거지자 한국의 대외 신인도를 확인하고 외화 차입에 문제가 없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 외평채 발행에 들어갔다. 신제윤 기획재정부 국제업무관리관은 "외평채 발행을 통해 과연 한국이 위기 상황인지 보여주겠다"며 로드쇼에 올랐다.

하지만 주요 투자자들 상당수가 처음부터 미국 국채 금리에 2.2%포인트 내외의 가산금리를 요구하면서 재정부에 비상이 걸렸다. 해외 금융시장의 신용 경색 현상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따져보지 않은 채 가산금리 2.0%포인트 이내에서 외평채 발행을 성공시키겠다는 목표를 세운 것이다.

신 관리관은 막판까지 딜을 성공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리먼브러더스의 유동성 위기 등의 악재로 시장 상황이 나빠져 발행을 연기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재정부 관계자는 "신용경색의 여파가 얼마나 심각한지 실감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현지 한국 금융계는 정부가 비록 시장 상황을 안이하게 보고 외평채 발행을 서둔 측면은 있지만 외평채 가산금리가 기업들이 외화를 빌릴 때 기준이 되는 만큼 신중한 결정을 한 것으로 평가했다.

◆외환시장 충격은 없어

외평채 발행 연기는 외환시장에 악재로 작용할 것으로 우려됐다. 그러나 이날 원.달러 환율은 오히려 약세로 출발했다. 종가는 전날보다 40전 하락한 1109원10전.

전문가들은 이미 전날 외환시장에서 소문이 퍼진 상황이라 이날 환율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뉴욕=이익원 특파원/주용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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