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를 걱정하며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했던 한국은행이 11일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정책금리를 현 수준(연 5.25%)에서 동결하기로 결정했다. 시장에선 한은의 금리 정책이 '긴축'에서 '중립'으로 돌아섰다는 평가를 내렸다. 당분간 금리를 움직이기 어렵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각에선 국내 경기 둔화를 고려할 때 한은이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장기적으로 금리 인하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성장 모멘텀 약화 막아야

한은은 이날 금통위에 제출한 '최근의 국내외 경제동향' 보고서에서 "향후 경제정책은 성장 모멘텀 약화 방지와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완화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밝혔다. 인플레이션 기대심리 완화는 그동안 한은이 수차례 강조했던 것이지만 '성장 모멘텀 약화 방지'란 문구가 이달에 새롭게 들어간 것이다.

한은이 경기 둔화에 대해 이전보다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성태 한은 총재도 금통위 이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하반기 경제성장률이 4% 아래로 떨어질 수 있다"며 "(성장 모멘텀 약화를 방지하기 위해) 국가 전체가 가지고 있는 정책수단을 다양하게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철수 대우증권 연구위원은 이에 대해 "더 이상 금리를 올리기는 힘들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근원인플레이션이 문제

하지만 한은이 당장 경기 부양을 위해 금리 인하 같은 적극적인 조치에 나설 가능성은 희박하다. 물가 불안이 여전하다는 이유에서다. 이성태 총재는 특히 "유류 채소 등 가격 변동성이 심한 품목을 뺀 근원인플레이션은 계속 높아지고 있다"며 "이는 과거 유가 상승에 따른 충격이 여전히 경제 내에 남아 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한때 배럴당 150달러에 육박하던 국제유가가 최근 배럴당 100달러 아래로 떨어지면서 '물가 불안이 둔화된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아직 안심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소비자물가와 생산자물가 상승세가 지난달 꺾인 것과 달리 근원인플레이션 증가율은 지난 7월 4.6%에서 8월 4.7%로 더 높아졌다.

이 총재는 또 "국제유가가 많이 내렸지만 환율이 크게 올랐고 공공요금 인상이 예정돼 있어 전체 물가 상승률은 앞으로 상당기간 쉽게 내려가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종연 우리투자증권 채권 애널리스트는 이에 대해 "한은 입장에선 여전히 물가에 대한 경계의 끈을 놓을 수 없을 것"이라면서도 "추가 금리 인상 징후로 볼 수는 없으며 오히려 이르면 연말쯤 금리 인하 가능성이 제기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채권금리 하락

채권시장도 민감하게 반응했다. 이날 3년만기 국고채 금리와 5년만기 국고채 금리는 나란히 0.04%포인트씩 하락하며 각각 연 5.69%와 연 5.73%에 거래를 마쳤다. '더 이상 금리 인상은 없을 것'이란 기대심리에 따른 것이다.

한편 이 총재는 이날 '9월 위기설'과 관련,"'이제 (금융불안이) 다 지나갔다'고 말하는 것은 조금 성급하다"고 지적했다. 국제 금융시장 불안이 여전한 데다 국내 금융시장이 워낙 외부에 노출돼 있어 당분간 변동성이 커지는 상황이 가끔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총재는 "국제 금융시장은 미국 주택시장과 연결돼 있어 가까운 장래에 평온을 되찾기 힘들 것"이라며 "한국 경제도 가까운 장래에 상황이 크게 호전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