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이 1080원대까지 일시적으로 급락하면서 통화옵션상품인 키코(KIKO) 계약을 청산하려는 움직임이 본격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키코 계약을 청산하려면 향후 손실을 한꺼번에 떠안아야 하지만 불확실성 제거 측면에서 주가에 오히려 긍정적일 것이란 판단에서다.

8일 주가 급등으로 인해 원·달러 환율이 지난 주말보다 36원40전 떨어진 1081원40전이 되자 키코 계약으로 피해를 입은 기업들이 청산 시점을 적극 검토하고 나섰다. 키코 계약을 청산하려면 남은 계약 기간의 손실까지 한꺼번에 정산해야 한다. 미실현된 평가손실을 현 시점에서 감수하겠다는 것이다.

상반기 말 84억원의 파생상품 손실을 입은 씨모텍이 대표적인 사례다. 씨모텍은 키코 손실이 발생하면서 주가 급락은 물론 소액투자자 290여명에게 손해배상 소송까지 당했다.

씨모텍 관계자는 "추가 환율 상승에 따른 손실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손실을 한꺼번에 정산해 계약을 청산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며 "다만 청산 시점을 환율 1050원 내외 부근으로 판단해 추가 하락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씨모텍은 지난 7월에도 통화옵션상품인 스노우볼 손실이 커지자 만기 1년을 남겨두고 과감히 청산했다.

그동안 기업들은 환율 하락에 따른 평가손실 축소를 기대했지만 원·달러 환율이 최근 1100원마저 넘어서자 기업들의 경영 판단이 완전히 바뀌었다. 향후 환율이 다시 급등할 경우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급증하는 키코 손실을 사전에 제거할 필요성을 느낀 것이다.

성진지오텍도 키코 손실이 올 상반기 699억원에서 추가로 확대될 가능성이 높아지자 적극 대처키로 했다.

성진지오텍 관계자는 "키코 계약 일부를 적정 환율대에 청산하는 방법과 함께 선물환 매입 계약 등 환율 상승에 대한 리스크를 제거해줄 수 있는 상품에 가입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키코 상품은 환율이 올랐을 때 낮은 가격으로 팔아 손실이 나는 구조여서 환율이 올라갔을 때 높은 가격에 살 수 있는 선물환 매입 계약에 가입하면 추가 환율 상승에 따른 피해는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은행 관계자는 "키코 계약 청산은 내부 자금이 충분한 기업들에 한해 할 수 있어 자금이 부족한 곳에선 대출을 이용하거나 리스크를 제거하는 방법에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고 말했다.

이선엽 굿모닝신한증권 연구위원은 "키코 계약을 청산하면 불확실성이 없어져 주가 추가 하락은 막을 수 있겠지만 막대한 손실을 한꺼번에 짊어져야 한다는 점에서 주가 반등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조진형 기자 u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