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학로 스타시티 극장에서 일명 ‘언더그라운드’ 가수의 개인 콘서트가 있었다. 내가 대학로로 문화의 무대를 옮기면서 드러난 절묘한 인연이기도 했다. 감탄을 자아내는 현란한 기타연주 솜씨와 남자로서 기교 없이 곱고 청아한 목소리는 300석 관객들의 영혼을 촉촉이 적셨다. 불혹을 넘긴 무명가수. 그는 기타를 처음 잡으면서 특이하게도 통기타 포크보다 젓가락 장단의 트로트에 매료되었다고 한다.

그의 내공은 무대 가수보다 막걸리판 생활가수로 쌓였다. 불특정 시청자를 향한 일방적 메아리가 아니라 객석의 청중들과 끈끈하게 눈빛을 주고받는 가운데서 켜켜이 다져졌다. 동요에서 트로트, 포크송, 팝송 등 매 곡마다 장르를 넘나들며 각박한 세상살이에 질식되었던 감성을 일깨웠다.

왜 이런 실력파가수가 지금까지 초야에 묻혀있을까. 200여명만 듣기에는 너무도 아까웠다. 가수는 무대 중간 중간에 우스갯소리처럼 자신이 살아온 인생의 파편을 회고했다.

제주도 출신인 그가 섬이 너무 답답하여 무작정 뭍으로 처음 탈출(?)한 때는 중학교시절. 뛰어난 기타 실력과 풍부한 감성으로 실력을 인정받자 미사리를 비롯한 통기타 무대에서 연일 러브콜이 쇄도했다. 여느 예술인처럼 그도 출연료를 쥐는 족족 술자리를 향유하며 하루하루 즐기는데 여념이 없었다.

그러다 문득 이상한 조짐을 느꼈다. 자기 노래를 찾는 사람들이 눈에 뛰게 줄기 시작한 것. 왜 그럴까. 그의 팬조차도 술과 담배에 찌든 목소리와 선율을 외면하기 시작한 것이다. 정신을 차려보니 불혹이 내일모래였다. 앨범하나 없는 빈털터리 노총각 무명가수 한 명이 거울 속에 홀로 서 있었다.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며 그는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를 생각했다. 하늘이 준 재능은 음악뿐. 뒤 늦었지만 유서처럼 세상에 남길 앨범 한 장을 남기기로 했다. 수중엔 한 푼 없었다. 별별 일을 다 하며 3년 동안 절치부심하여 드디어 한 장의 CD가 완성됐다.

그러나 유일한 재산인 육신조차도 기타마저 제대로 가눌 수 없을 정도로 만신창이가 되어있었다. 앨범이 과연 세상에 남기는 마지막 유서가 될 것인가. 앞도 깜깜 뒤도 깜깜. 남은 건 오직 절망뿐.

그는 여기서 일생일대의 중대 결심을 한다. 하지만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하늘에 맡기자. 가수로서 앨범까지 만들었으니 팬들이 찾아 줄지는 하늘에 맡기자. 하지만 팬들이 찾을 때 언제든지 무대에 설수 있는 나를 준비하자.’

그가 새해를 보며 단행한 ‘준비’는 바로 금주, 금연. 밥보다도 즐겨했던 술과 담배를 단 칼에 끊고 만 것이다.

그렇게 팬들을 맞을 준비를 했다. 청중 없는 가수로 100일이 지나고, 반년이 지나고, 200일이 지났다. 그리고 이렇게 300석 무대에 서게 된 것이다.

그는 무대에서 싱겁게 웃으며 지나가듯 말했다.

“(화려했던)옛날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이만큼 온 건만도 다행이에요. 비록 가난하지만 저는 지금의 내가 좋습니다. 내 재능만 믿고 일찌감치 스타가 되고 시련이 없었다면, 이 나이에 제가 얼마나 교만해져 있었겠어요.”

그렇게 무대는 막이 내렸다.

많은 분들이 찾아와 기도를 한다. 자식이 좋은 곳에 합격하고, 집이 팔리게 하고, 장사 잘되게 하고, 가족 간에 화목하게 해달라고.

하지만 이만큼 가져서 감사하다고 고마움을 느끼는 사람은 드물다. 세상엔 자식이 없고, 팔 집이 없고, 장사할 밑천이 없고, 싸울 가족조차도 없는 사람도 많다. 자신이 가진 것을 알지 못하고 더 달라며 바라는 기도.......
오늘, 40대 무명가수가 건네준 CD를 듣고 싶다. (hoo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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