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나의 도시'로 4년 만에 복귀.."연기 너무 하고싶어"

그는 4년간 도망가 있었다.

세상이 싫었고 사람들의 시선이 무서웠다.

그런데 모든 연락처를 바꾸고 꽁꽁 숨어지내던 그는 한 드라마의 대본을 받아보고는 '잠수 생활'을 접고 그로부터 일주일 만에 촬영장으로 복귀했다.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는 말을 요즘 절감하고 있어요. 복귀하게 된 것이 신기하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진재영(31)은 이렇게 말하며 다소 멋쩍은 듯 웃었다.

지난달 1일 막을 내린 SBS TV 프리미엄 드라마 '달콤한 나의 도시'에서 철없지만 귀엽고 사랑스러운 재인 역을 맡아 예고도 없이 복귀했던 그는 "서른살 재인이의 모습이 너무 마음에 들었는데 그게 촬영 일주일 전이었다. 정말 정신없이 준비해 촬영장으로 돌아갔다"고 말했다.

그는 2004년 MBC TV '황태자의 첫사랑'에서 도도한 여배우 역으로 출연한 뒤 갑자기 연예계에서 사라졌다.

그의 연락처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10여 년간 제 매니저 일을 봐줬던 한 살 위의 친오빠가 '황태자의 첫사랑' 직후 심근경색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어요. 오빠의 죽음이 제 일을 봐준 스트레스 때문이었다는 생각이 들어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었어요. 마지막까지 날 위해 일했던 오빠였거든요."

그는 고등학교 졸업 반 때 부산 PBS 탤런트 공채 1기로 뽑히면서 연예계에 데뷔했다.

서울로 진출한 뒤 독한 마음을 먹고 3개월 만에 사투리 억양을 싹 고치는 등 연기에 대한 열정을 보였고, 각종 CF와 쇼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주가를 날렸다.

하지만 2002년 영화 '색즉시공'을 계기로 '섹시 스타'라는 수식어가 붙어다니게 되면서 그는 이를 부담스러워하기 시작했다.

"전 '색즉시공' 시나리오가 코믹해서 출연했는데 개봉되고 나니 제가 갑자기 섹시한 콘셉트로 포장이 되는 걸 보고 놀랐어요. 이후 '낭만자객'에서는 전혀 벗지도 않았는데 '섹시한 귀신'으로 포장됐고, '황태자의 첫사랑'에서도 도도한 콘셉트였을 뿐인데 '섹시한 배우'로 포장되더군요. 그게 싫었어요."

그러다 난데없이 찾아온 오빠의 돌연사는 진재영에게 감당할 수 없는 무게로 다가왔다.

"연예계 생활하면서 사람들에게 휩쓸리는 것이 힘들었어요. 여기저기 정신없이 불려다니면서 지치기도 했고 남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제 모습을 보며 내가 과연 누군가 싶었어요. 오빠는 하늘나라에 가서도 제가 활발히 활동하기를 바랐겠지만 전 오빠 없이 활동하는 것이 자신 없었어요. 혼란스러운 상태에서 4년이 흘렀고 시간이 지나면서 복귀하는 것이 점점 더 두려워졌어요."

그런데 '달콤한 나의 도시'의 박흥식 감독이 그를 세상으로 다시 불러냈다.

그 사연도 드라마틱하다.

1997년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의 조감독이었던 박 감독은 당시 오디션에 참여했던 진재영의 발랄하고 사랑스러웠던 이미지를 10여 년 간직하다 이번에 그를 정말 열심히 수소문했다.

"박 감독님이 '달콤한 나의 도시'를 준비하면서 재인 역으로는 저를 처음부터 생각하셨대요. 끝내 연락이 안될 수도 있었는데 촬영 일주일 전에 절 극적으로 찾아내신 것이 신기할 따름이에요."

섹시한 이미지에서 탈피하고 싶었던 진재영은 "재인이를 통해 나라는 사람을 있는 그대로 잘 보여주고 싶었는데 찍으면서 정말 행복했다. 매회 새로운 마음이 들었고 에너지가 새록새록 솟아나는 느낌이었다"며 활짝 웃었다.

시청자들도 게시판 등을 통해 '달콤한 나의 도시'를 통해 진재영을 새롭게 봤다는 평을 많이 올려 그의 복귀를 반겼다.

달라진 진재영은 내친김에 지난달 말 의류 쇼핑몰 아우라J(www.aura-j.kr)도 오픈했다.

"극중 재인이 세련된 패션 감각을 자랑하는 역이라 촬영하면서 의상에도 많은 관심을 갖게됐는데 어떻게 하다보니 쇼핑몰을 오픈하게 됐어요. 처음에는 시장에 가서 의상을 사 오는 것도 울렁증이 있어 어려웠는데 지금은 '우리 것부터 빨리빨리 주세요'라며 상인들을 다그치고 있어요.(웃음)"

"'달콤한 나의 도시'에서 은수(최강희 분), 유희(문정희), 재인을 다 합쳐 놓은 것이 실제 내 모습 같다"는 그는 "생각을 바꾸면 세상이 다르게 보인다고 이제는 모든 것이 즐겁다. 쉬지 않고 계속 연기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윤고은 기자 pretty@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