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은 신뢰를 먹고 산다고 했던가. 경제주체들 간의 신뢰가 무너지면 시장은 혼란에 휩싸이고,질서를 무너뜨리려는 반란 시도도 그치지 않게 마련이다. 우리 경제를 강타하고 있는 '9월 위기설'은 바로 그런 토양 위에서 자란 병균들의 행진에 다름 아니다.

갈 지(之)자 행보를 보여온 환율정책이 그렇고,공기업 민영화를 외치다가 어설픈 선진화로 포장해 각 부처가 알아서 추진하라는 식의 후퇴를 보여준 것 또한 고장난 경제운용시스템의 전형이 아닐 수 없다. 재정부와 금융위원회,한국은행 등 금융정책 당국들이 긴밀한 협조는커녕 서로 상반된 시그널을 시장에 내보내고 있으니 황당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추경편성을 둘러싸고는 당정 간에 갈등이 표출되는가 하면,세제개편안을 내놓으면서 부자들을 위한 정책이라는 야당의 비난을 의식해 이미 약속한 법인세 인하까지 1년 뒤로 미루자는 여당의 요구를 그대로 수용하는 정부의 일관성 없는 정책운용은 시장신뢰의 기반을 스스로 훼손하는 자해행위와 뭐가 다른가.

경제위기설이 등장한 것은 꽤 오래 전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다가 9월이 돼서야 법석을 떨었다. 그러나 그 내용이 또 가관이다. "과장됐다"거나 "쏠림현상 등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것 등이 고작이다. 위기설의 진원(震源)인 만기외채구조나 규모 등에 대해 실상을 소상히 밝히고 그 허구를 설득하려는 노력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러니 정부가 금융상황점검회의를 열고 심리적 쏠림에 의한 거품환율을 방치하지 않겠다며 적극적인 진화에 나섰는데도 오히려 연 이틀 환율이 폭등한 것 아닌가. 그뿐만이 아니다. 건설경기를 부양하겠다며 부동산대책을 발표한 날 건설주 주가가 일제히 급락하는가 하면,대규모 감세안을 내놓은 지난 1일에는 주가지수가 60포인트 가까이 떨어지는 '반란'수준의 시장반응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대로 갈 수는 없다. 해법을 찾기 위해서는 신뢰 위기의 근본적 이유가 무엇인지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경제정책을 책임지고 일관성있게 추진해 갈 컨트롤 타워가 없는 국정운영시스템의 오류가 가장 큰 요인이다. 한마디로 경제부총리 제도의 부활이 현명한 해법이라고 얘기할 수 있는 것이다. 부총리 제도가 이명박 정부 출범과 함께 단행된 지난 2월의 정부조직 개편에서 폐지된 것은,헌법의 권한배분 등 정부편제의 기본원칙에 비추어 근거가 취약하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실상은 경제정책의 조정을 청와대가 직접 맡겠다는 뜻이 담겨져 있음은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다.

문제는 그로 인해 경제정책의 일관성 유지가 어려울 뿐만아니라 일사불란한 국정추진시스템도 갖추기 어렵다는 점이다. 그간의 경험으로 알 수 있는 일이다. 대통령은 정치적일 수밖에 없고 정책조정에서도 정치논리가 우선하게 되어 있다. 경제부처의 의견수렴과 판단이 배제되면서 자칫 졸속 조율과 결정이 이뤄질 공산이 크다는 얘기다. 지난 몇 달 엄청난 사회적 혼란을 몰고 온 쇠고기협상 파문만 해도 경제부총리가 있었다면 좀 더 다른 결과를 가져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최근의 금융위기 대응에서도 그렇다. 금융정책의 주체가 국제금융은 재정부,국내금융은 금융위,금융감독과 통화신용정책은 한국은행,여기에 청와대 등으로 갈라져 있다보니 신속하고 체계적인 대처가 어려웠다.

기획재정부 장관이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역할을 한다지만 '여러 장관 중의 하나'로는 경제부처의 수장 노릇을 제대로 하기 어렵다. 더이상의 혼란을 줄이려면 경제부총리 제도의 도입을 서두를 필요가 있다. 성장과 안정 사이를 방황하고 규제를 푼다면서 좌고우면하는 정치적 판단이 우선된다면 정책의 신뢰위기를 벗어날 길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