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2월4일 미국PGA투어 퀄리파잉토너먼트 최종라운드 최종홀.강욱순(42·삼성전자·사진)은 30㎝ 거리의 파퍼트를 남겨두었다. 그 퍼트를 넣으면 한국인으로는 최경주에 이어 두 번째로 미PGA 투어멤버가 탄생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 퍼트는 홀을 외면했다. 한국프로골프 상금왕을 두 번(1999,2002년)이나 차지 하며 10승을 거뒀던 강욱순은 그렇게 1타 차이로 미국투어 진출에 실패했다. 그리고 깊은 침체의 늪에 빠졌다. 스스로는 "다 잊었다"고 했지만 승부처에서 실수로 재기의 기회를 날릴 때마다 주변에서는 '30㎝ 사건 탓'이라고 수군거렸다.

지난해 레이크힐스오픈 최종 라운드 18번홀에서 어이없는 실수를 저지른 탓에 연장전에 끌려 들어가 강경남(24)에게 우승컵을 내줬고 올해에도 필로스오픈 마지막 날 후반에 잇따른 버디 찬스를 살리지 못해 준우승에 머물기도 했다.

"한때 골프를 포기할까 생각도 했다"는 강욱순이 5년여 만에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강욱순은 31일 제주 라온GC(파72·길이 7186야드)에서 끝난 한국프로골프 SBS코리안투어 조니워커블루라벨오픈(총상금 3억원)에서 4라운드합계 12언더파 276타를 기록,김형성(28·삼화저축은행) 박도규(38·투어스테이지) 이태희(24·우리골프) 주흥철(27·동아회원권)을 2타차로 제치고 정상에 올랐다.

1989년 프로가 된 강욱순은 2003년 8월 부경오픈 이후 5년1개월 만에 승수를 추가했다. 국내대회 통산 11승째다. 무엇보다 긴 침체의 터널에서 벗어나 '젊은 선수'들과 다시 우승경쟁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 우승의 값어치를 높였다. 강욱순은 우승상금 6000만원과 함께 국내에 단 100병만 반입된 '조니워커 블루라벨 애니버서리'를 부상으로 받았다. 또 내년 초 호주에서 열리는 유러피언투어 조니워커클래식에 출전할 수 있는 자격을 획득했다.

'신예' 주흥철에게 1타 뒤진 2위로 최종라운드에 들어선 강욱순은 1,3번홀에서 1m, 2m 거리의 버디퍼트를 성공하며 선두로 올라섰다. 10번홀(파5)에서 티샷이 숲으로 날아가 큰 위기를 맞았으나 보기로 마무리한 뒤 다시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다. 13번홀(파3)에서 2m 버디퍼트를 성공하며 중간합계 11언더파로 2위권 선수들을 1타차로 따돌렸다. 강욱순은 16번홀에서 1m 거리의 버디퍼트를 넣어 승부에 쐐기를 박았다.

제주=김경수 기자 ksm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