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동종업체ㆍ과다차입 반대, 오너 윤리성 중시"
산은 "매각 주체인 우리가 심사 기준ㆍ후보 결정"

올해 인수합병(M&A)의 최대 현안인 대우조선해양 인수전에 GS, 포스코, 현대중공업, 한화가 뛰어든 가운데 대우조선 노조가 인수 부적격 후보를 지정하고 자체적으로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기준을 발표하는 등 목소리를 높이면서 매각 과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31일 업계에 따르면 대우조선 노조는 회사 지분 인수 의향서를 제출한 현대중공업에 대해 강하게 인수 반대 의사를 밝히는 등 회사 매각 과정에 본격적으로 개입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 노조 '매각 과정에 개입' = 대우조선 노조는 최근 투쟁속보를 통해 "현대중공업의 경우 집권당의 최고위원이 장악하고 있고, 현 정부와의 관계 또한 밀착돼 있다"며 "따라서 대우조선 매각은 특혜성 내지는 봐주기식 편법으로 전개될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노조는 "동종업체인 현대중공업이 인수에 성공할 경우 정보 유출 및 인력 조정이 우려된다"며 현대중공업에 대해 강한 반대의 뜻을 밝혔다.

노조는 컨소시엄 참여를 타진 중인 STX에 대해서도 같은 이유로 줄곧 반대 의사를 견지하고 있다.

또 노조는 인수 후보 기업과 오너의 윤리성 등 비(非)가격 부문 평가 비중을 40% 이상 적용하고 재무적 투자자(FI)를 포함한 차입 규모가 전체 인수금액의 절반을 넘지 않아야 된다는 내용의 우선협상자 선정기준 반영 요구안까지 마련했다.

앞서 노조는 기업의 도덕성과 오너의 과거 행적 등을 이유로 한화와 두산에 대해 거부감을 보인 바 있으며 두산이 인수의향서 접수 직전에 발을 빼 나름대로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회사 매각이 추진될 경우 노조가 인수 후보의 자격 요건에 대해 입장을 표명하는 것은 흔한 일이지만 대우조선 노조의 움직임이 특히 관심을 끄는 것은 다른 인수합병 사례와는 달리 노조의 목소리에 힘이 실릴 수 있는 여건을 어느 정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강성으로 꼽히는 대우조선 노조는 매각 작업에 참여시켜 줄 것을 요구하며 산업은행의 현장실사를 저지하다가 산은 측과 입장 철회를 조건으로 노사공동위원회 구성, 투명한 매각심사 위원회 구성 등에 합의한 바 있다.

더욱이 유례없는 조선 호황에 힘입어 회사가 좋은 실적을 내고 있는 상황에서 회사의 발전을 일궈낸 일꾼들이 당연히 새로운 주인의 자격 요건에 대해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노조의 주장도 어느 정도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

노조 관계자는 "사측과 지분 매각에 대한 공동위원회도 구성한 만큼 회사의 장기적인 발전을 위해 부적격 후보 퇴출을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 산은 '매각 주체는 우리다' = 반면 매각 주체인 산업은행은 대우조선 노조에 대해 '당사자'가 아니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산은 고위 관계자는 "노사 공동위는 심사기준, 후보자 선정, 후보자 자격 등에 대해서 영향을 미치지 못하며 산업은행이 독립적이고 공정하게 판단해서 처리한다"며 "노조가 생각하듯이 직ㆍ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이 관계자는 "노사 공동위는 노조가 회사 내부의 문제에 대한 의견을 개진하기 위한 것이지 매각 절차와 관련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며 노사 공동위의 역할에 대해 큰 비중을 두지 않았다.

이 관계자는 또 "노조가 매도자 실사를 저지하고 나섰을 때도 노사간 문제이지 주주와 노조 간 문제가 아니라는 이유를 들어 앞으로 나서지 않고 대우조선 경영진이 해결 주체가 되도록 했다"고 밝혔다.

◇ 대우조선 '노조에 암묵적 동의' = 대우조선 경영진은 노조가 회사 매각에 본격적으로 개입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데 대해 별다른 입장을 표명하지 않고 있다.

다만 매각 주체는 산은이고 노조가 매각과 관련해 입장을 밝힐 수는 있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을 뿐이다.

사측은 그러나 노조의 최근 움직임에 대해 내심 반기는 분위기라는 게 대우조선 관계자의 전언이다.

매각 주체가 산업은행인 만큼 공식적으로 노조의 움직임에 맞장구칠 수는 없지만 동종업체 인수 반대, 인수 후보의 재무구조 건전성 등을 외치는 노조의 목소리가 사내의 전반적인 정서와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이 관계자는 "매각을 추진 중이지만 회사의 실적이 호조를 보이고 있고, 특히 임직원들은 글로벌 3위 업체라는 사실에 큰 자부심을 지니고 있다"며 "이처럼 공통된 정서 때문에 동종업체 인수에 대해서는 모두가 원치 않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서울연합뉴스) 김범수 기자 bumso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