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 문화街] 만나고 싶은 배우 정ㆍ재ㆍ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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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월요일 한 출판사에 있는 후배가 요즘 출판사 사정이 무척 어렵다는 이야기를 하다가 갑작스럽게 "지금까지 만난 배우들이 몇 명이나 되요?"라는 질문을 했다. 언뜻 생각이 나지 않아 "글쎄,많지 뭐"라고 말했는데,영화전문지 기자 생활 10여년을 하면서 만난 배우가 얼마나 될까 하는 궁금증이 들긴 했다. 지금까지 인터뷰한 원고들을 정리해보면 대략 몇 명이었는지 알 수 있겠지만 게으름 때문에 그런 일은 엄두도 못 내고,대신 만나고 싶었는데,그러지 못한 배우들을 떠올려 봤다. 그 수가 몇 되지 않았는데,가장 먼저 떠오른 배우가 정재영이었다.
배우와 기자 사이에도 인연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영화배우의 경우 1년에 1편,많아야 2편 정도 출연을 하는데,영화전문지의 경우 기자수가 많다 보니 그 영화들을 담당하지 않으면 배우와의 만남이 어려워진다. 그러다 보면 계속해서 빗나가는 인연이 되어 10여년을 영화기자 생활을 해도 만나지 못하는 배우가 있다.
그런 대표적인 배우로 단박에 떠오른 이가 정재영이다. 신하균,임원희와 함께 대표적인 장진 사단(장진 감독과 연극시절부터 함께 해온 배우군을 지칭한다)의 일원인 정재영은 <기막힌 사내들>부터 <거룩한 계보>까지 장진 감독의 모든 영화에 출연했으며,그와 친분이 있는 감독들의 영화에 모두 출연했다. 올해는 <강철중 : 공공의 적 1-1>에서 정감 가는 악역인 이원술로 여름을 보냈고,<신기전>에서 조선시대 다연발 로켓포인 신기전 개발을 돕는 설주 역으로 관객과 만난다. 그의 영화인생 초기의 영화들은 거의 다 담당을 했는데,아마 조연으로 출연해서 만날 기회가 없었던 듯하다.
솔직히 그가 갑자기 만나고 싶어진 것은 <신기전> 때문이다. 그가 맡은 설주 캐릭터는 배우들이 연기하기 가장 까탈스러운 인물이다. 시나리오를 보고 인물에게 포인트를 줄 수 있는 '이거다' 하는 컨셉트가 잡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럴 땐 배우들에게 많은 짐이 지워진다. 특히 전체적인 영화의 흐름에 있어 연기의 톤을 맞추는 것이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설주는 보부상의 우두머리로 리더의 카리스마를 가져야 하는 반면 극의 긴장감을 늦춰주는 코믹한 면도 있어야 한다. 홍리(한은정)와의 애정 전선도 구축하지만 멋진 액션도 보여줘야 한다. 정재영의 매력은 이런 어려운 인물을 쉽게(하지만 그에게는 결코 쉽지 않았겠지만) 연기한다는 점이다.
정재영 연기의 진정한 매력은 땀냄새에 있다. 아마 스크린을 통해 향기가 관객들에게 전달될 수 있다면 정재영이 등장하는 장면에선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서 나는 땀냄새가 풍길 것이다. 그는 좋아하는 여자 앞에선 진땀을,심각한 상황에서는 식은땀을,일하는 모습에선 더운 땀을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그의 연기가 눈에 띄지 않는 건 연기 스타일 자체가 화려하지 않은 것도 있지만 그만큼 영화 속에 잘 녹아들기 때문이다. 근래 그의 이전 영화를 보며 매력을 곱씹어보고 있다. 씹을수록 맛나는 곱창 같은 그의 연기가 맛있다. 동갑내기인 그에게 선풍기 잘 돌아가는 대폿집에서 곱창을 구우며 인연을 만들자고 청해 본다.
/이원 영화칼럼니스트